그림으로 세상읽기
선동기 미술에세이스트
1563년, 피렌체에서 처음 시작된 미술 아카데미는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며 정형화된 미술 교육 체계를 만들어갑니다. 당시 미술은 오늘날 사진과 같은 기록물의 의미도 있었습니다. 아카데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분야는 종교화와 역사화, 신화를 담은 내용과 초상화였습니다. 풍속화나 풍경화는 등급이 낮은 장르로 보았습니다. 우리의 일반적인 생활이 본격적으로 그림의 주제가 된 것은 19세기로 접어들면서 가능해졌습니다. 요즘처럼 수많은 사람이 병으로 쓰러져가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림은 그것을 어떻게 담았을까요?
길거리 이곳저곳에 쓰러진 사람들의 시체가 보입니다. 계단에 몸을 기대고 있는 남자는 큰 모포로 몸을 덮었지만, 몸은 검게 변했습니다. 그 옆의 여인은 마지막 단말마의 손짓을 하고 있는 듯한데, 대문에 창을 꽂고 있는 남자가 있습니다. 그의 옆에는 흰 날개를 한 천사가 있습니다. 마치 대문을 열고 나가면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서기 165년, 로마의 풍경입니다.
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전염병이 돌기 시작한 것은 파르티아와의 전쟁에서 승리의 소식을 들고 병사들이 돌아온 직후였습니다. 천연두라고 생각되는 이 병은 서기 165년부터 15년간 로마 제국에 퍼지면서 500만 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최근 연구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그 이전까지 ‘팍스 로마나’를 유지했던 로마 제국은 전염병 이후 급격하게 힘을 잃고 내전과 외침에 시달립니다. 당시 신흥 종교인 기독교를 찾는 사람들의 숫자가 급격하게 늘어난 것도 종교의 힘을 빌어 병을 치유해보자 했던 서민들의 소망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지옥도가 따로 없습니다. 해골 군단이 한 무리의 사람들을 포위해서 상자곽 같은 건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필사적으로 탈출하려는 사람들과 해골 군인과 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희망은 없어 보입니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개는 시체를 뒤적거리고 있고 저 멀리서 사람들을 태우는 불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페스트가 휩쓸고 지나간 마을의 모습이 플랑드르 화가 피테르 브뢰헬의 작품 속에 남아 있습니다.
1347년, 크림반도에 있는 카파라는 도시를 포위하고 있던 몽골제국의 킵차크한국 병사들이 흑사병에 걸린 사람의 시체를 성벽을 향해 던져 놓았습니다. 킵차크한국의 포위를 피해 서둘러 제노바 소속의 배 12척이 시칠리아섬에 도착하면서 흑사병은 유럽 전역을 감염시키기 시작합니다. 시칠리아에 도착하는 순간 이탈리아에서 빠르게 흑사병이 퍼져 나갔고 이탈리아에서 퇴거 명령을 받은 배는 1348년 1월, 프랑스 마르세이유 항구에 도착합니다. 그해 6월, 흑사병은 프랑스와 스페인, 포르투갈과 영국까지 빠른 속도로 번져 나갔습니다. 1349년에는 독일과 스코틀랜드,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흑사병의 영토가 되었고 1351년에는 러시아의 북서부 지역까지 전염되고 맙니다. 마치 마른 들판에 불이 번져 나가듯 흑사병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가며 유럽 인구의 1/4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마침 한 신사를 발견하고 집 안의 여인이 옷을 벗긴 여자아이를 창밖으로 내리고 있습니다. 집 안에 있는 아버지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하고 어머니 역시 애써 참는 얼굴인데 아이는 엄마의 옷을 잡고 무슨 말인가 하는 듯 합니다. 아이는 아마 이 상황이 어떤 것인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밑에서 조심스럽게 아이를 받는 신사의 옆에는 아이가 입을 옷을 들고 있는 소녀가 있고 오른쪽에는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문에 몸을 기댄 여인이 보입니다. 그녀는 이미 숨이 끊어졌습니다.
프랭크 톱햄은 1664년부터 1665년까지 흑사병이 런던을 휩쓸 당시 사무엘 페피(Samuel Pepy)라는 사람이 남긴 일기의 내용에서 이 작품의 주제를 가져왔습니다. 페피의 일기 따르면, 그림 속 부부에게는 아이들이 몇 있었는데 흑사병으로 모두 잃고 마지막 남은 딸이라도 살리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부부도 아마 흑사병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을 발견하고 딸을 밖으로 내보내는 장면입니다. 1665년 4월에 시작된 런던의 페스트는 여름 동안 도시 전체로 번져 나갔고 페스트가 끝났을 무렵 런던 시민의 15% 정도인 10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수에 젖은 눈빛과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우리를 보고 있는 남자는 오스트리아 화가 에곤 쉴레입니다. 그 앞에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는 있는 여인은 그의 아내 이디트이고, 그녀 무릎 사이의 곱슬머리 아이는 둘 사이의 아이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상상 속의 아이입니다. 1918년 10월 28일, 에곤 쉴레의 아내 이디트는 당시 유행하던 스페인 독감으로 목숨을 잃습니다. 그녀의 뱃속에는 아이가 있었지요. 그리고 3일 뒤, 에곤 쉴레 역시 세상을 떠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미완성으로 남아 있습니다. 1920년까지 유행했던 스페인 독감은 5억명 정도가 감염되었고 그 중 1억 명 정도가 이 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인류를 멸망시킬 것은 핵이 아니라 바이러스라는 예언이 떠 오릅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야겠습니다. 훗날 화가들은 2020년의 봄을 어떻게 그림으로 남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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