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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그림・전시

한국화가 하성흡 소쇄원 48경

by 파장 2013. 6. 23.

소쇄원 48영

소쇄원은 조선중기 문신이자 유학자인 소쇄 양산보(1503~1557)가 1530년 지은 정자와 정원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정원이라고 합니다.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지석리에 123번지 위치하고 있는 소쇄원은 1981년 국가사적 제304호로 지정되어 보호 관리되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조광조의 제자였던 양산보는 1519년 중종 14년 기묘사화때 훈구파의 모함에 빠져 스승과 뜻을 같이했던 사류들이 모두 거세되자 정세가의 길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 소쇄원을 짓고 은거했습니다. 그런 그와 뜻을 같이 하던 벗 김인후는 이 소쇄원의 아름다움을 마흔여덟수의 오절절구로 지었고, 이것이 바로 소쇄원 48영이라고 합니다.

소쇄원 전도 - 하성흡

소쇄원의 48영을 수묵화로 담은 한국화가 하성흡님은 전남대학교에서 한국화를 전공하고 민중미술과 남도문화를 화폭에 주로 담고 있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1990년 고 문익환목사 통일집회 인물도, 전남대생 박승희씨 장례행렬도, 소쇄원 48영 등이 있고, 현재도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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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영 소정빙란(小亭憑欄) 작은 정자의 난간에 의지해

작은 정자의 난간에 의지해 - 하성흡

瀟灑園中景 渾成瀟灑亭 擡眸輪颯爽 側耳廳瓏玲

소쇄원중경 혼성소쇄원 대모륜삽상 측이청룡영

"소쇄원의 빼어난 경치가 한데 어울려 소쇄정 이루었네. 눈을 쳐들면 시원한 바람 불어오고, 귀 기울이면 구슬 굴리는 물소리 들려라"

소정(小亭)은 소쇄정이다. 소쇄원의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넓은 축대가 있다. 여기에 초가로 작은 정자를 꾸미고 그 축대 옆엔 물길을 내어 작은 연못을 만들고 고기를 놓아먹여, 손님이 오면 낚시로 건져 회 안주를 삼았다고 한다. 이 정자는 작고 낮은 데 위치했으나 소쇄원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영롱한 소리는 물소리이면서 선비가 드나들 때 나는 패옥이 부딪히는 소리이다.

 

2영 침계문방(枕溪文房) 시냇가의 글방에서

시냇가의 글방에서 - 하성흡

窓明籤軸淨 水石暎圖書 精思隨偃仰 竗契入鳶魚

창명첨축정 수석영도서 정사수언앙 묘계입연어

"창 밝으니 방안의 첨축들 한결 깨끗하고, 맑은 수석엔 책들이 비춰 보이네. 정신들여 생각하고 마음대로 기거하니오묘한 계합 천지 조화의 작용이라네"

송시열은 양산보의 행장에서 김인후가 소쇄원에 묵으면서 지은 시에 산은 보지 못해도 원하면 나무는 본다는 말을 인용하여 김인후와 양산보가 현인군자임을 말하였다.

 

3영 위암전류(危巖展流) 높직한 바위에 펼쳐 흐르는 물

높직한 바위에 펼쳐 흐르는 물 - 하성흡

溪流漱石來 一石通全壑 匹練展中間 傾崖天所削

계류수석래 일석통전학 필련전중각 경애천소삭

"흐르는 물은 바위를 씻어 내리고 하나의 돌이 개울에 가득하네. 가운데는 잘 다듬어졌으니 경사진 절벽은 하늘의 작품이로다."

소쇄원 계곡의 승경을 모두 말한 시다. 물의 흐름은 도통의 흐름을 상징한다. 아래로 학문을 해서 상달하는 뜻이 있다. 무이도가의 일곱번째에서 이런 시상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학도의 뿌리가 뻗어 자손 대대로 지치의 경지인 선계가 될 것을 비는 뜻이 있다.

4영 부산오암(負山鼇巖) 산을 등지고 있는 거북바위

산을 등지고 있는 거북바위 - 하성흡

背負靑山重 頭回碧玉流 長年安不抃 臺閣勝瀛州
배부청산중 두회벽옥류 장년안불변 대각승영주

"등뒤엔 겹겹의 청산이요, 머리를 돌리면 푸른 옥류(玉流)라. 긴긴 세월 편히 앉아 움직이지 않고, 대와 광풍각이 영주산 보다 낫구나."

소쇄원 북동쪽 담장 밖에는 산을 배경으로 '오암'이 있다. 이곳에서도 소쇄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그 옆엔 매대가 있고 저 아래 숲속에 선계처럼 광풍각이 보인다.

1영에서는 소정을, 2영에서는 공부하는 모습을, 3영에서는 소쇄원의 핵심인 계곡의 전경을, 4영에서는 소쇄원의 온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5영 석경반위(石逕攀危) 위험한 돌길을 더위 잡아 오르며

위험한 돌길을 더위 잡아 오르며 - 하성흡

一逕連三益 攀閑不見危 塵蹤元自絶 苔色踐還慈
일경연삼익 반한불견위 진종원좌절 태색천환자

"좁은 길 연이어 매(梅), 죽(竹), 석(石) 삼익(三益 ) 일세, 바위턱 매달려 오르다 위험을 보지 못하니, 속세의 자취 절로 끊는데 으뜸이라, 이끼는 밟혀도 또다시 푸르구나"

소식은 매, 죽, 석을 찬양하면서 '매화는 차가워도 빼어나고, 대나무는 여위어도 오래 살고, 돌은 추해도 문기가 있으니 이것이 삼익의 친우가 된다' 라고 하였다.

6영 소당어영(小塘魚泳) 작은 연못에 고기떼 놀고

작은 연못에 고기떼 놀고 - 하성흡

方塘未一畝 聊足貯淸猗 魚戱主人影 無心垂釣絲
방당미일부 요족저청의 어희주인영 무심수조사

"네모진 연못은 한 이랑도 되지 못하지만 맑은 물받이 하기엔 넉넉하구나. 주인의 그림자에 고기떼 헤엄쳐 노니 낚싯줄 내던질 마음 전혀 없어라."

물고기와 주인의 화순한 모습을 그렸다. 상류에서 나무홈통으로 뽑아내린 물이 소정 바로 옆에 있는 작은 연못으로 흘러든다. 여기서 고기들은 주인과 더불어 즐긴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 사람은 '도'를 떠나서 살 수 없다는 관어도(觀魚圖)의 일단이다.

7영고목통류(刳木通流) 나무 홈통을 뚫고 흐르는 물

나무 홈통을 뚫고 흐르는 물 - 하성흡

委曲通泉脉 高低竹下地 飛流分水碓 麟甲細渗差
위곡통천맥 고적죽하지 비류분수대 인갑세삼차

"샘 줄기의 물 홈통을 뚫고 굽이쳐 흘러 높낮은 대숲 아래 못에 내리네. 세차게 쏟아져 물방아에 흩어지고 어물 속의 인갑들은 잘아서 들쭉날쭉 하네."

소쇄원도에 의하면 소정 옆 소당小塘에서 계곡쪽에 모형 물레방아가 걸쳐 있고, 그 아래 바로 소당의 두배쯤되는 큰 못이 있다. 이 못엔 순나무도 자라고 물고기도 있었다.

8영 용운수대(舂雲水碓) 물보라 일으키는 물방아

물보라 일으키는 물방아 - 하성흡

永日潺湲力 舂來自見功 天孫機上錦 舒卷擣聲中
영일잔원력 용래자견공 천손기상금 서권도성중

"온종일 줄줄 흐르는 물의 힘으로 찧고 찧어서 절로 공을 이루네. 천손이(직녀) 짜놓은 베틀의 비단 방아 찧은 가운데 책을 걷으락 펴락"

이 시는 농촌을 풍경을 사실화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양씨 가문의 자손 번성을 기리고 있는 듯하다. 운(雲)자의 뜻은 8대 후손이라는 의마도 있다. 모형 물레방아의 제작의미를 생각해보고 제목에 구름 '운' 이 쓰인 것을 보아 짐작함이다. 7영과 8영이 또 짝을 이루고 있다.

9영 투죽위교(透竹危橋) 통나무대로 걸쳐 놓은 높직한 다리

통나무대로 걸쳐 놓은 높직한 다리 - 하성흡

架壑穿脩竹 臨危似欲浮 林塘元自勝 得此更淸幽

가학천수족 임이사욕부 임당원자승 득차경청유

"골짜기에 걸쳐서 죽림으로 뚫렸는데 높기도 하여 하늘에 둥둥 떠있는 듯, 숲 속의 연못 원래 빼어난 승경이지만 다리가 놓이니 속세와는 더욱 멀어졌네."

무이도가 중에는 도통이 끊김을 단교斷橋로 표현했다. 이 시에서는 다리를 놓아 더욱 경치가 좋아졌다는 이야기다. 이는 학도學道의 기운이 소쇄원뿐만 아니라 세속에까지 이어질 조짐을 암시한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단서는 그 다음에 이어지는 시에서 나타난다.

10영 천간풍향(千竿風響) 대숲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대숲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 하성흡

已向空邊滅 還從靜處呼 無情風與竹 日夕奏笙篁

이향공변멸 환종정처호 무정풍여죽 일석주생간

"하늘 가 저 멀리 이미 사라졌다가 다시 고요한 곳으로 불어오는 바람. 바람과 대 본래 정이 없다지만 밤낮으로 대피리 분다네"

도통이 잘 이어져 자연의 음악이 울리는 선경이다. 대나무가 높이 자라서 대나무 윗부분은 바람에 흔들려 소리가 난다. 이 소리를 선계의 음악으로 듣는다.

11영 지대납량(池臺納凉) 못 가 언덕에서 더위를 식히며

못 가 언덕에서 더위를 식히며 - 하성흡

南州炎熱苦 獨此占凉秋 風動臺邊竹 池分石上流

남주염열고 독차점량추 풍동대변죽 지분석상류

"남쪽 고을은 무더위가 심하다지만, 이 곳만은 유달리 서늘한 가을. 바람은 언덕 가의 대숲에 일고, 연못 물 바위 위에 흩어져 흐르네."

48영 중에는 여름을 노래한 것이 특히 많다. 소쇄원은여름을 지내기에 좋은 곳이다. 이곳을 아끼며 더위를 피하기 위한 제일의 장소로 여기는 이 시에서 김인후는 양산보에 대한 부러움마저 가지고 있다.

12영 매대요원(梅臺邀月) 매대에 올라 달을 맞으니

매대에 올라 달을 맞으니 - 하성흡

林斷臺仍豁 偏宜月上時 最憐雲散盡 寒夜暎氷姿

임단대잉활 편의월상시 최련운산진 한야영빙자

"나무숲 쳐내니 매대는 확 트여서, 달 떠오는 때가 유달리 좋으니. 구름도 다 걷혀감이 가장 사랑스러워 차가운 밤이라 아름다운 매화 곱게 비추네."

11영이 지대를 노래했으니 그 댓구로 매대를 노래했다. 구름을 헤치고 내민 반가운 달의 모습이 얼음에 비치는 모습에 청초한 선비의 기상을 나위없이 드러내고 있다.

13영 광석와월(廣石臥月) 넓은 바위에 누워 달을 보며

넓은 바위에 누워 달을 보며 - 하성흡

露臥靑天月 端將石作筵 長林散靑影 深夜未能眠

노와청천월 단장석잔연 장림산천영 심야미능면

"밝은 달 아래 이슬 받으며 넓은 바위는 바로 좋은 자리가 됐네. 주위의 숲에는 그림자 운치 있게 흩어져 깊은 밤인데도 잠 이룰 수 없어라."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바위에서 이슬을 맞으며 밝은 달을 쳐다본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안타까움이라기 보다는 너무나 좋은 자연에 잠을 이룰 수 없다는 예찬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4영 원규투류(垣竅透流) 담장 밑구멍을 뚫고 흐르는 물

담장 밑구멍을 뚫고 흐르는 물 - 하성흡

步步看波去 行吟思轉幽 眞源人未沂 空見透墻流

보보간파거 행음사전유 진원인미기 공견투장류

"한 걸음 한 걸음 물을 보고 지나며 글을 읊으니 생각은 더욱 그윽해. 사람들은 진원을 찾아 거슬러 가지도 않고 부질없이 담 구멍에 흐르는 물만을 보네."

지금도 담장 밑에 도랑을 내어 예전처럼 물이 흐르고 있다. 계곡물이 흐르는 줄기를 두고 그 위에 담을 쳐놓음은 하나의 신기에 속한다. 오곡류는 바로 그 아래이며 좌측으로 오곡문을 지나면 뒷산으로 이어진다.

15영 행음곡류(杏陰曲流) 살구나무 그늘 아래 굽이도는 물

살구나무 그늘 아래 굽이도는 물 - 하성흡

咫尺潺湲池 分明五曲流 當年川上意 今日杏邊求

지척간원지 분명오곡류 당년천상의 금일행변구

"지척에 물줄기 줄줄 내리는 곳, 분명 오곡의 구비 도는 흐름이라. 당년 물가에서 말씀하신 공자의 뜻, 오늘은 살구나무 가에서 찾는구나."

'相生(상생)'의 원리를 노래했다. 김인후가 지은 소쇄원주인만에서 이라고 한 것을 보면 물이 굽이쳐 흘러감을 노래한 것으로도 생각된다. 오곡수는 내원의 상류로서 담장 바로 아래부터 시작한다. 물이 흐름을 처음부터 상생으로 축복한 뜻이 있다. 동봉의 살구나무는 약효가 있다는 고사가 있는데, 여기서 행림은 의원을 뜻한다. 불로장생은 누구나 바라는 꿈이다.

16영 가산초수(假山草樹) 석가산의 풀과 나무들

석가산의 풀과 나무들 - 하성흡

爲山不費人 造物還爲假 隨勢起叢林 依然是山野

위산불비인 조물환위가 수세기총림 의연시산야

"인력을 들이지 않고 만든 산이지만, 조물(造物)이라 도리어 석가산 됐네. 형세를 좇아 우거진 숲을 일으켰구나, 역시 산야 그대로 이네."

광풍각 아래 물가에 생긴 조그만 가산假山이 있다. 여기에 작은 화초와 나무들을 심어 산처럼 꾸몄다. 가산은 축소된 자연으로 인공적인 수식을 가하여 감상하는 우리네 조상들의 취미였다.

17영 송석천성(松石天成) 천연의 소나무와 바윗돌

천연의 소나무와 바윗돌 - 하성흡

片石來崇岡 結根松數尺 萬年花滿身 勢縮參天碧

편석래숭강 결근송수척 만년화만신 세축참천벽

"조각난 돌이 굴러와 언덕을 이루니, 결국 뿌리를 내려 작은 소나무가 되었네. 오랜 세월에 몸엔 꽃을 가득 피우고, 기세 곧아서 하늘 높이 솟아 푸르네."

소쇄원 가장자리는 대나무를 심고 그 안쪽으로 소나무를 심어 풍치를 돋운 것을 알 수 있다. 소나무도 대나무와 같은 시적 상상의 내용을 갖추고 있다.

18영 편석창선(遍石蒼蘚) 바윗돌에 두루 덮인 푸른 이끼

바윗돌에 두루 덮인 푸른 이끼 - 하성흡

石老雲煙濕 蒼蒼蘚作花 一般丘壑性 絶義向繁華

석로운연습 창창선작화 일반구학성 절의향번화

"바윗돌 오래되어 구름 안개에 젖어, 푸르고 푸르러 이끼 꽃을 이루네. 흔히 구학을 즐기는 은자들의 본성은 변화함에는 전연 뜻을 두지 않는다네."

오를 때 밟을수록 재미있던 이끼가 바위에 덮힌 모습을 그윽하게 묘사하고 있다. 김인후는 이 시를 통하여 여기야말로 '도통'이 끊기지 않은 곳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17영의 송석에 대하여 18영에서 편석으로 짝을 맞췄다.

19영 탑암정좌(榻巖靜坐) 평상바위에 조용히 앉아

평상바위에 조용히 앉아 - 하성흡

懸崖虛坐久 淨掃有溪風 不怕穿當膝 便宜觀物翁

현애허좌구 정소유계풍 불파천당슬 편의관물옹

"낭떠러지 바위에 오래도록 앉았으면 깨끗하게 쓸어가는 계곡의 시원한 바람. 무릎이 상한 데도 두렵지 않아 만물을 관조하는 늙은이에겐 가장 알맞네."

'탑암'은 소정과 광풍각 중간쯤 계곡 아래에 바로 물이 흐르는 곳에 접해있는 바위인데 여기 앉으면 시원하기가 이를 데 없다. '세상 구경하는 늙은이'는 송의 안빅낙도하던 요윤공에 비유한 것일 수도 있고 소옹의 책 관물편을 말한 것으로 신선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0영 옥추횡금(玉湫橫琴) 맑은 물가에서 거문고 비껴 안고

맑은 물가에서 거문고 비껴 안고 - 하성흡

瑤琴不易彈 擧世無種子 一曲響泓澄 相知心與耳

요금불이탄 거세무종자 일곡향홍징 상징심여이

"소리내는 거문고 타기 쉽지 않는 건, 세상에는 종자기같은 친구 없어서라. 맑고 깊은 물에 한 곡조 울리고 나면, 마음과 귀만은 서로 안다네"

이는 양산보와 김인후의 사귐을 나타낸 것 같다. 사귐을 고귀하게 생각하면서 '도'로 맺어진 우정을 나타냄이다. '옥추횡금'은 조담 바로 위에 편편한 바위에서 그 아래 폭포소리를 들으며 거문고를 타는 풍류를 나타낸 말로 진실한 옛 사람의 사귐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21영 복류전배(洑流傳盃) 빙빙도는 물살에 술잔 띄워보내며

빙빙도는 물살에 술잔 띄워보내며 - 하성흡

列坐石渦邊 盤蔬隨意足 洄波自去來 盞斝閒相屬

열좌석와변 반소주의족 회파자거래 잔가한상속

"물살 치는 돌 웅덩이에 둘러앉으면, 소반의 술안주 뜻한 대로 넉넉해. 빙빙 도는 물결에 절로 오고가니, 띄우는 술잔 한가로이 서로 권하네."

조담槽潭과 폭포 사이에 물이 소용돌이 치는 곳이 있다. 이 주위에 지기知己와 둘러 앉아 풍성한 소채를 안주 삼아 술을 즐긴다. 술잔을 물에 띄우면 잔은 물결을 따라 저절로 한바퀴를 빙돌아간다.

22영 상암대기(床巖對棋) 평상바위에서 바둑을 두며

평상바위에서 바둑을 두며 - 하성흡

石岸稍寬平 竹林居一半 賓來一局碁 亂雹空中散

석안초관평 죽림거일반 빈래일국기 난박공중산

"평상바위 조금은 넓고 평평하여, 죽림이 그 절반을 차지했다네. 손님이 와서 바둑 한판 두는데, 공중에서 우박이 흩어져 내려."

소정에서 폭포를 건너면 '상암'이 있다. 이 시를 보면 소쇄원의 주인이 마치 자기인 양 시를 쓰고 있다. 양산보와 거의 함께 이곳에 기거하였음을 이런 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바둑알을 놓는 소리가 우뢰로 비유된 시원한 이 시는 사귐과 복류에서 술을 나누고 상암에서 바둑으로 즐기는 신선같은 삶의 표현이다.

23영 수계산보(脩階散步)긴 섬돌을 거닐며

긴 섬돌을 거닐며 - 하성흡

澹蕩出塵想 逍遙階上行 吟成閒箇意 吟了亦忘情

담탕출진상 소요계상행 음성한개의 음료역망정

"차분히 속세를 벗어난 마음으로 소요하며 섬돌 위를 구애 없이 걷네. 노래할 땐 갖가지 생각들 한가해지고 읊고 나면 또 희로 애락의 속정 잊혀지네."

흥이 나서 읊고 구태어 기억하려 애쓰지 않고 곧 잊는 것이 부담없이 무젖은 '달도達道'의 삶이다. 만사가 지루할 때 툭툭 털고 산보에 나서는 유유자적한 여유가 그윽하다. '도'에 젖으면 이런 무연의 즐김이 있을까.

24영 의수괴석(倚睡槐石) 회화나무 옆 바위에 기대어 졸며

회화나무 옆 바위에 기대어 졸며 - 하성흡

自掃槐邊石 無人獨坐時 睡來驚起立 恐被蟻王知

자소괸변석 무인독좌시 수래경기립 공피의왕지

"몸소 회화나무 가의 바위를 쓸고서, 아무도 없이 홀로 앉아 있을 때에. 졸다가 놀래어 일어서는 건 의왕에게 알려질까 두려워서라."

당나라 사람 이공좌가 남가기 라는 글을 지었는데, "순우분은 광릉에 사는 사람으로 그 집 남쪽에 오래된 홰나무가 있었다. 분은 자기 생일에 실컷 취하여 그 홰나무 아래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 괴안국에 이르러 남가태수가 되어 20년을 봉직하고 장가들어 5남 2녀를 낳았으며 영화와 영달을 마음껏 누렸으나, 나중에 적과 더불어 싸우다가 패배하고 공주도 세상을 떠나 자신도 상처를 입어 돌아왔다. 깨어보니 동자가 빗자루로 뜰을 쓸고 있고 해는 아직 떨어지지 않고 술동이는 그대로 있었다. 홰나무의 구멍을 찾아보니 남가군이라는 괴수 나뭇가지 밑에 개미구멍이 있었으며, 꿈에서 본 왕이란 곧 의왕으로, 즉 개미왕을 나타내었다." 후세 사람들이 꿈을 들어 '남가'라 부르는 것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이다.짐짓 남가일몽이 아니라 현세에서 누리는 신선을 자부한다. 23영과 함께 제 2단락의 결사로서 선계의 감상을 노래했다. 김인후는 소쇄원을 찾아온 나그네이지만 주인의 입장에서 노래 했다. 이것만 보아도 둘의 사귐이 높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12영가지인 제 1단락보다 더욱 무르익은 선경을 그리고 있다.

25영 조담방욕(槽潭放浴) 조담에서 미역을 감고

조담에서 미역을 감고 - 하성흡

潭淸深見底 浴罷碧粼粼 不信人間世 炎程脚沒塵

담청심견저 욕파벽린린 불신인간세 염정각몰진

"맑은 조담 깊어도 바닥이 보이고, 미역을 감고나도 맑기는 여전해. 미덥지 않은 건 인간 세상이라, 염정을 걷던 발 때도 씻어버리네."

기수에서의 목욕을 이렇게 실현하고 있다. 목욕에도 의미를 부여하였다. 세상 일엔 좋은 것처럼 보이나 해로운 것도 있고, 해로운 것처럼 보이나 좋은 경우도 있다.

26영 단교쌍송(斷橋雙松) 다리 너머의 두 그루 소나무

다리 너머의 두 그루 소나무 - 하성흡

㶁㶁循除水 橋邊樹二柗 藍田猶有事 爭及此從容

괵괵순재수 교변수이송 남전유유사 쟁급차종용

"콸콸 소리내며 섬돌 따라 흐르는 물, 다리 너머에 두 그루 소나무 서 있네. 옥이 나는 남전은 오히려 일이 분주해, 그 다툼은 조용한 여기에도 미치리라"

무이도가 중에서는 '도'를 전하고 싶어도 단교가 되어 사람이 찾아들지 않음을 노래하였는데, 이 시에서는 세속의 번거로움이 선지에 스며들까 하여 오히려 단교를 다행으로 여기는 심사가 있다.

27영 산애송국(散崖松菊) 벼랑에 흩어져 있는 소나무와 국화

벼랑에 흩어져 있는 소나무와 국화 - 하성흡

北嶺層層碧 東籬點點黃 緣崖雜亂植 歲晩倚風霜

북령층층벽 동리점점황 녹애장난식 세만의풍상

"북쪽의 고개는 층층이 푸르고, 동쪽 울타리엔 점점이 누런 황국이라. 낭떠러지 장식하여 여기저기 심어 있고. 세밑 늦가을 풍상에도 버티고 섰네."

임금을 향한 충성을 실토했다. 아득히 임금 계신 곳을 바라보아 푸른 기상으로 수놓고 도잠의 국화꽃으로 충정을 호소하고 있다.

28영 석부고매(石趺孤梅) 받침대 위의 매화

받침대 위의 매화 - 하성흡

直欲論奇絶 須看揷石根 兼將淸淺水 疎影入黃昏

직욕논기절 수간삽선근 겸장청천수 소영입황혼

"매화의 신기함을 바로 말하려거든, 모름지기 돌에 꽂힌 뿌리를 보아야 해. 맑고 얕은 물까지 겸하고 있어 황혼이면 성긴 그림자들 드리우네."

매화의 굳센 절조를 노래했다. 27영의 소나무, 국화와 짝을 맞춘 것은 선비의 본분을 강조한 뜻이다. 25영, 26영에서 백성과 임금과 근심하며 살아가는 선비의 모습을 나위없이 표현하고 있다.

29영 협로수황(夾路脩篁) 좁은 길가의 밋밋한 대나무들

좁은 길가의 밋밋한 대나무들 - 하성흡

雪幹摐摐直 雲梢嫋嫋經 扶藜落晩蘀 解帶繞新莖

설간창창직 운초뇨뇨경 부려낙만탁 해대요신경

"눈에 덮인 대 줄기 곧아서 창창하고, 구름에 싸인 대 끝 솔솔바람에 간드러지네. 지팡이 짚고 나가 묵은 대껍질 벗기고, 띠를 풀어서 새 줄기는 동여준다네"

길을 넓히느라고 띠로 새줄기를 동인다. 지기들의 왕래를 위해서다. 대밭의 묘사를 실감나게 하고 자연귀의의 몰입경을 그리고 있다.

30영 병석죽근(迸石竹根) 바위틈에 흩어져 뻗은 대 뿌리

바위틈에 흩어져 뻗은 대 뿌리 - 하성흡

霜根牌染塵 石上時時露 幾歲長兒孫 貞心老更苦

상근치염진 석상시시록 기세장아손 정심노경고

"흰 대 뿌리 티끌에 더럽혀질까 하면서도, 시시로 돌 위에 뻗어 나오네. 어린 대 뿌리 몇 해를 자라났는고, 곧은 마음은 오랠수록 더욱 모질다네."

소나무, 국화와 매화를 노래하고 나서 대나무는 두 수나 불렀다. 28영에서 매화화 물의 조화를 노래하듯 이 시에서는 대나무와 바위를 어울리게 지었다. 변하지 않는다는 바위에 절조의 대나무가 뿌리를 서려 두어 '곧은 속은 갈수록 쇤다'고 소쇄원 주인의 인간적 성숙을 기렸다.

31영 절애소금(絶崖巢禽) 낭떠러지에 집 짓고 사는 새

낭떠러지에 집 짓고 사는 새 - 하성흡

翩翩崖際鳥 時下水中遊 飮啄隨心性 相忘抵白鷗

편편애제조 시하수중유 음탁수심성 상망저백구

"벼랑 가에서 펄펄 나는 새, 때때로 물 속에 내려와 노네. 마시고 쪼는 건 제 심성 그대로요, 본디 잊었다네, 백구와 저항하기를"

새가 천성대로 사는 즐거움은 바로 양산보의 삶이다. 순천의 이치로 살아가는 한마리 물새가 되어 있는 실상이 오붓하다. 낭떨어지에 나는 새가 물에 비치니 물 속에서 노니는 것으로 보인다.

32영 총균모조(叢筠暮鳥) 해 저물어 대밭에 날아드는 새

해 저물어 대밭에 날아드는 새 - 하성흡

石上數叢竹 湘妃餘淚班 山禽不識恨 薄暮自知還

석상수총죽 상비여루반 산금부식한 박모자지환

"바위 위 여러 무더기의 대나무 숲, 상비의 눈물 자국 아직도 남았어라. 산새들 그 한을 깨닫지 못하고, 땅거미 지면 제 깃 찾아들 줄 아네."

높은 경지에 대한 열열한 갈망을 노래한 시다. '상비'는 중국 요임금의 딸인 아황과 여영으로, 순임금에게 시집가 순임금이 죽은 뒤, 상수에 몸을 던져 신이 되었다는 고사가 있다.

33영 학저면압(壑渚眠鴨) 산골 물가에서 졸고 있는 오리

산골 물가에서 졸고 있는 오리 - 하성흡

天付幽人計 淸冷一澗泉 下流渾不管 分與鴨閒眠

천부유인계 청냉일간천 하류혼불관 분여압한면

"하늘이 유인에게 부쳐준 계책은 맑고 시원한 산골짜기 샘물이라네. 아래로 흐르는 물 모두 자연 그대로라, 나눠 받은 물가에서 오리 한가히 조네."

물은 무이도가에서 도통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려지듯, 이 시에서도 마찬가지다. 윗 성인으로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통서에 힘입어, 한마리 오리가 타고난 대로 조는 도취경이 묘사되었다. 자연과 '도'와의 혼열일체로 이렇게 태평한 세상이다.

34영 격단창포(激湍菖蒲) 세차게 흐르는 여울물가의 창포

제34영 激湍菖蒲(격단창포) 세차게 흐르는 여울물가의 창포

聞說溪傍草 能含九節香 飛湍日噴薄 一色貫炎凉

문설계방초 능함구절향 비단일분박 일색관염량

"듣자니 여울 물가의 창포, 아홉 마디마다 향기를 지녔다네. 날리는 여울 물 날로 뿜어대니, 이 한가지로 염량을 꿰뚫는다오."

선경이야 아홉 가지 향기가 그득하고 더위와 추위의 구별이 없을 것이다. 권세에 아첨하였다 해도 세력이 꺾이면 푸대접 받는 것이 세속의 일이다. 세속에서 소쇄원을 일러 이렇게 기린다는 뜻이 은연중 담겨져 있다.

35영 사첨사계(斜簷四季) 빗긴 처마 곁에 핀 사계화

빗긴 처마 곁에 핀 사계화 - 하성흡

定自花中聖 淸和備四時 茅塹斜更好 梅竹是相知

정지화중성 청화비사시 모첨사경호 매죽시상지

"정작 꽃 중의 으뜸으로 치는 사계화, 사시로 청화함을 갖추어서인가. 초가지붕 비스듬해 더욱 운치 있어라, 매화와 대나무도 곧 알아준다네."

사계라는 꽃을 찬미한 시다. 매화, 대나무와 맞먹는 좋은 꽃으로 칭송했다. 강희안의 화목구품에 의하면, 일품에는 송, 죽, 연, 국, 매이고 '사계'는 3품에 속한다. 이는 사계화를 매죽의 위계로 추기는 노래이다. 사계화는 장미의 일종인데 3, 6, 9, 12월에 개화하여 '사계'라는 이름을 얻었다.

36영 도오춘효(桃塢春曉) 복숭아 언덕에서 맞는 봄 새벽

복숭아 언덕에서 맞는 봄 새벽 - 하성흡

春入桃花塢 繁紅曉霧低 依徵巖洞裏 如涉武陵溪

춘입도화오 번홍효무저 의징암동리 여섭무릉계

"복숭아 언덕에 봄철이 찾아드니, 만발한 꽃들 새벽 안개에 드리워 있네. 바윗골 동리 안이라 어렴풋하여 무릉계곡을 건너는 듯하구나."

안개에는 '도'에 이르는 아득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무이구곡'에 표현되어 있다. 여기 무릉은 도학의 경지이지 선교의 도원이 아니다. 무이도가의 아홉번째에서 말한 '별유천지'일 뿐이다.

37영 동대화음(桐臺夏陰) 오동나무 언덕에 드리운 여름 그늘

오동나무 언덕에 드리운 여름 그늘 - 하성흡

巖崖承老幹 雨露長淸陰 舜日明千古 南風吟至今

암애승로간 우로장청음 순일명천고 남풍취금지

"묵은 오동 줄기 바위 벼랑까지 이어 있어, 비와 이슬의 혜택이라 항시 맑게 그늘지네. 순임금의 은혜 길이길이 밝혀져서, 온화한 남풍 지금까지 불어주네"

제 4단락의 첫 시다. 제 1단락에서는 '도'에 나아가는 실상을 노래했다면 이 단락에서는 무젖은 도취의 즐김을 노래했다. 이 무르익은 선경은 요순시대를 말하는 이상세계다. 우로는 임금님의 은덕이요 순일과 남풍은 '도'가 실천되던 시대를 말하고 있다.

38영 오음사폭(梧陰瀉瀑) 오동나무 녹음 아래 쏟아지는 폭포

오동나무 녹음 아래 쏟아지는 폭포 - 하성흡

扶疎綠葉陰 昨夜溪邊雨 亂瀑瀉枝間 還疑白鳳舞
부소녹엽음 작야계변우 난폭사지간 환의백봉무

"무성한 나뭇가지 녹엽의 그늘인데, 어젯밤 시냇가엔 비가 내렸네. 난무하는 폭포 가지 사이로 쏟아지니, 돌아보건대 봉황새 춤추는 게 아닌가."

무이도가의 일곱번째에서 온고지신하는 전통의 맥락을 그린 것처럼 쏟아지는 물줄기는 학도의 전통을 상징한다. 오동나무를 심는 뜻은 봉황을 기다림이다. 오동나무 사이로 보이는 폭포를 봉황의 춤으로 비유하여 노래하고 있다.

39영 유정영객(柳汀迎客) 버드나무 물가에서의 손님 맞이

버드나무 물가에서의 손님 맞이 - 하성흡

有客來敲竹 數聲驚晝眠 扶冠謝不及 繫馬立汀邊

유객래고죽 수성경주면 부관사불급 계마립정변

"나그네 찾아와서 사립문 두드리매, 몇 마디 소리로 낮잠을 깨었네. 관을 쓰고 미처 인사드리지 못했는데, 말 매놓고 버드나무 물가에 서 있네."

버드나무를 심고 거기서 손님을 맞이 하였다. 벼슬은 양산보와는 무관한 것, 찾아오는 이도 세속의 문제를 안고 오는 이가 아니다. 남도 부러워하는 승지에서 '도'와 더불어 사는 양산보를 기린 시다.

40영 격간부거(隔澗芙蕖) 골짜기 건너편 연꽃

골짜기 건너편 연꽃 - 하성흡

淨植非凡卉 閒姿可遠觀 香風橫度壑 入室勝芝蘭

정식비범훼 한자가원관 향풍횡도학 입실승지란

"조촐하게 섰는 게 훌륭한 花卉(회훼)로다, 한가로운 모습 멀리서 볼 만하고. 향긋한 기운 골짝을 건너와 풍기네, 방안에 들이니 지란보다 더 좋구나."

주무숙이 애련설에서 '진흙구덩이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기어도 요사롭지 않다'고 하였으니, 이는 선비의 바른 모습이다. 양산보를 꽃에 비유하였다.

41영 산지순아(散池蓴芽) 연못에 흩어져 있는 순채 싹

연못에 흩어져 있는 순채 싹 - 하성흡

張翰江東後 風流識者誰 不須和玉膾 要看長氷絲

장한강동후 풍류식자수 불수화옥회 요간장빙사

"장한이 강동으로 귀향한 후로, 풍류를 아는 이 그 누구던고. 반드시 사랑하는 농어회 같이하지 않더라도, 기다란 순채 싹 맛보고자 하네."

순나물은 진의 장한이 벼슬을 그만두고 귀향했을 때의 고향 맛이다. 농어회야 없지만 그래도 그에 버금할 만큼 즐길 수 있다는 풍류를 앞세운 주장이다. 예전에는 고기가 놀고 순나물이 자라던 작은 인공 못을 표현함이다.

42영 친간자미(櫬澗紫薇) 산골물 가까운에 핀 백일홍

世上閒花卉 都無十日香 何如臨澗樹 百夕對紅芳

세상한화훼 도무십일향 하여임간수 백석대홍방

"세상엔 무성히 자란 꽃이라도, 도무지 열흘 가는 향기 없다네. 어찌하여 산골 물가의 배롱나무만은, 백일 내내 붉은 꽃을 대하게 하는고."

소쇄원 계곡에서 식영정 앞에 이르는 시냇물가에는 자미(백일홍)가 줄지어 곱게 피어 있어 이 내를 자미탄이라 부른다. 이런 승경에서 소쇄원을 즐길 수 있는 것이 무궁함을 자랑했다.

43영 적우파초(滴雨芭蕉) 빗방울 떨어지는 파초잎

빗방울 떨어지는 파초잎 - 하성흡

錯落投銀箭 低昻舞翠綃 不比思鄕廳 還憐破寂寥

착란투은전 저앙무취초 불비사향청 환연파적요

"어지러이 떨어지니 은 화살 던지는 듯, 푸른 비단 파초잎 높낮이로 춤을 추네. 같지는 않으나 사향의 소리인가, 되레 사랑스러워라. 적막함 깨뜨려 주니."

파초는 본래 고향을 떠나온 식물로 고향을 그리워하는 심상을 담고 있다. 자연의 소리를 즐기기 위하여 심은 파초이기에 적막을 깨는 것도 밉지 않다. 비를 은화살로, 파초잎의 흔들림을 푸른 비단 춤으로 비유하고 있다.

44영 영학단풍(映壑丹楓) 골짜기에 비치는 단풍

골짜기에 비치는 단풍 - 하성흡

秋來巖壑冷 楓葉早驚霜 寂歷搖霞彩 婆娑照鏡光

추래암학랭 풍엽조경상 적력요하채 파사조경광

"가을이 드니 바위 골짜기 서늘하고, 단풍은 이미 서리에 놀래 물들었네. 아름다운 채색 고요하게 흔들리니, 그 그림자 거울에 비친 경치로다."

장설의 시에 이라고 한 것을 바탕으로 하였다. 고요한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흔들리는 나무가지를 거울에 비친 것으로 비유하여 맑게 묘사하고 있다.

45영 평원포설(平園鋪雪) 평원에 깔려 있는 눈

평원에 깔려 있는 눈 - 하성흡

不覺山雲暗 開窗雪滿園 階平鋪遠白 富貴到閒門

불각산운암 개창설만원 계평포원백 부기도한문

"산에 낀 검은 구름 깨닫지 못하다가, 창문 열고 보니 평원엔 눈이 가득하네. 섬돌에도 골고루 흰눈 널리 깔리어 한적한 집안에 부귀 찾아들었네."

겨울을 배경으로 한 노래로 두 영이 있는데 그 중의 한 작품이다. 축복의 서설이다. 부귀는 덕이 높은 이나 가질 수 있는 혜택으로 믿었던 김인후가 소쇄원을 찬양하였다.

46영 대설홍시(帶雪紅梔) 눈에 덮인 붉은 치자

曾聞花六出 人道滿林香 絳實交靑葉 淸姸在雪霜

증문화육출 인도만림향 강실교청엽 청연재설상

"듣건대 치자꽃 여섯 잎으로 핀다더니, 사람들은 그 자욱한 향기 넘친다 하네. 붉은 열매 푸른 잎과 서로 어울려, 눈서리에도 맑고 곱기만 하여라."

치자의 꽃과 향기, 열매의 아름다움을 묘사했다. 눈서리가 앉은 붉은 치자 열매는 높은 절조의 단심이 아닌가. 선비의 마음을 표현한 시다.

47영 양단동오(陽壇冬午) 애양단의 겨울 낮맞이

애양단의 겨울 낮맞이 - 하성흡

壇前溪尙凍 壇上雪全消 枕臂延陽景 鷄聲到午橋

단전계상동 단상설전소 침비연양경 계성도오교

"애양단 앞 시냇물 아직 얼어 있지만, 애양단 위의 눈은 모두 녹았네. 팔 베고 따뜻한 볕 맞이하다 보면, 한낮 닭울음소리가 타고 갈 가마에 들려 오네."

고요와 한가에서 '도'를 깨우치는 실상이 보인다.

48영 장원제영(長垣題詠) 긴 담에 써 붙인 소쇄원 제영

긴 담에 써 붙인 소쇄원 제영 - 하성흡

長垣橫百尺 一一寫新詩 有似列屛障 勿爲風雨欺

장원횡백천 일일사신시 유사열병장 물위풍우기

"긴 담은 옆으로 백 자나 되어, 하나하나 써 붙여 놓은 새로운 시. 마치 병풍 벌려 놓은 듯하구나, 비바람만은 함부로 업신여기지 마오"

47영과 48영은 제 4단의 끝이자 48영 전체의 결사이기도 하다. 무르익은 '도'의 승경이 영원하기를 비는 마음이 빚은 시다.

<자료출처>그림 : 한국화가 하성흡블로그, 글 : 담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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