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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문・사회・역사

누가 중우정치를 꿈꾸는가?

by 파장 2013. 8. 6.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 주최로 8월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제5차 범국민대회에 수많은 촛불을 든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남소연기자> 


누가 중우정치를 꿈꾸는가?


 

이용마 MBC 해직기자 

 

정쟁 속에 사라진 법치(法治)와 역사 인식


국가정보원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 개입한 사실이 발각된 뒤 곤경에 처하자 멋대로 남북정상회담 기록물을 공개해 정쟁을 유발하며 국가 기강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명색이 국가기관인데, 불법을 더 큰 불법으로 덮으려는 또 다른 정치공작에 골몰하고 있다. 국가기관으로서 ‘법치’에 대한 인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여당은 한 술 더 뜬다. 대화록이 공개되자 국정원의 바통을 이어받아 곧바로 정쟁에 뛰어들었다. 국정원의 불법적인 대화록 공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이 이미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 부관참시에 나섰다. 국방부도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NLL포기나 다름없다”며 국정원의 불법행보에 장단을 맞췄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NLL은 피와 죽음으로 지킨 곳”이라며 NLL을 둘러싼 정쟁을 부추긴다.


정부와 여당의 바람몰이에 위기를 느낀 야당은 즉각 NLL 대화록 공개에 합의했다. 자신들을 향해 잘못한 것 아니냐고 몰아붙이자, 잘못 없으니 다 까서 보자는 심정의 발로이다. 하지만 정쟁은 또 다른 정쟁을 낳는다. 정부와 여야의 끝없는 정쟁 속에 역사 인식은 찾아볼 수 없다. 조선왕조 600년 동안 유지돼온 사초(史草)에 대한 훌륭한 전통은 잘못된 후손들로 인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이번 논쟁에서 분명한 것은 단 하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상회담 과정에서 무슨 말을 했든 NLL은 해상군사분계선으로 존재하고 있고, 이 사실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당분간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NLL을 둘러싼 실체 없는 정쟁에 몰두하는 것은 오로지 국정원의 정치공작을 덮고 야당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정략적 목표 때문이다. 정략 속에 국익은 설 자리를 뺏겼다.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여기는 자들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라는 자들의 법치의식 내지 역사인식의 문제만이 아니다. NLL 논란 속에 파묻혀버린 대선과정에서 국정원의 댓글작업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사실이 발각되자 불법인 줄 알면서도 난데없이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하고 나선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이것은 한마디로 여론을 조작해 자기들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기관과 언론을 동원하면 실제로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가 발생한 직후부터 여론조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미네르바’를 구속하고, 기관원들이 인터넷에 글을 올린 사람들을 따라다니는 등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 시작했다. 공영방송 사장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무리하게 교체해 입바른 소리를 하는 기자와 PD들을 내쫓고 언론을 장악했다. 총리실이 나서서 민간인 사찰을 하고 여기에는 국정원, 검찰, 경찰까지 동원되었다.

 

과거 군사정부 시절처럼 눈에 띌 정도로 일상적인 억압과 통제를 가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정부를 향한 비판적인 목소리를 어느정도 잠재우는 성과는 거두었다. 그 결과 권력 재창출에도 성공했다. 이명박 정부를 이은 박근혜 정부 역시 이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근혜’ 정부라는 악명을 떨칠 수 없는 요인일 것이다. 



민주주의란 기본적으로 국민이 주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국민의 뜻을 권력이 원하는 방향으로 멋대로 조정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참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저 통치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이다.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만 보는 자들에게 국민은 어리석은 계도의 대상일 뿐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어리석은 계도의 대상들에게 필요한 건 자유로운 공론장이 아니라 채찍과 당근이다.

국정원의 공작정치와 언론 자유의 유린, 두 사안의 공통점은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중우정치를 꿈꾸는 것이다. 2013년 여름, 현재 대한민국에서 실종된 것은 정상회담 대화록 등이 아니라 바로 민주주의이다. 1970년대 유신의 그림자가 21세기의 문턱을 넘어 기웃거리고 있다 

 

이용마 MBC 해직기자.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지금은 정치학 박사학위 취득 중. 관악산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부지런함의 공존 불가를 절실히 깨닫고 있음. 게으름이 요구되는 시대의 선각자!


<참여연대 발간 월간 참여사회 201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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