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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문・사회・역사

지구촌을 미소 짓게 만든 프란치스코 교황

by 파장 2013. 8. 6.


권복기 한겨레 기자 


뉴스에 등장할수록 얼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볼수록 더 보고 싶은 ‘분’도 있다. 후자에 해당하는 인물이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그가 취임했을 때 적지 않게 놀랐다.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쓴 첫 교황이었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는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아시시 출신으로 ‘가난과의 결혼’을 선언하고, 한평생 노동과 묵상으로 하느님을 섬기며, 예수와 사도들의 모범을 따르고자 했던 성인이다. 한편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프란치스코’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이름을 선택한 교황의 행보에 궁금증이 생겼다. 새 교황이 과연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기도’를 지켜나갈 만큼 내공을 지니고 있을까?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평화의 기도)

 

걱정은 기우였다. 외신을 통해서 들려오는 교황의 소식은 전쟁, 테러, 빈곤, 재난 등의 소식으로 척박한 지구촌에 가뭄의 단비 같은 복음이었다. 그는 취임식 연설부터 달랐다. 그는 “모든 사람을 돌보는 것, 특히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로마의 주교인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선언했다. 자신을 ‘로마의 주교’로 낮추는 것부터가 울림을 줬다. 

그는 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준 세족식 전통을 시행하면서도 파격을 선보였다. 그가 세족식을 위해 찾은 곳은 로마 근교의 청소년 교정시설. 북아프리카 등 가난한 나라에서 건너온 이민자의 자녀들이 많은 곳이다. 그는 사제와 남성들에게만 해오던 관례를 과감히 깨부수고 여자 소년원생과 무슬림의 발도 씻겨주었다. 

세상을 향한 그의 발언은 더욱 신선했다. “추위에 숨진 노숙자나 굶는 아이들은 뉴스거리도 안 된다”며 언론의 보도 태도를 비판했고, 각국 대사들과의 면담 자리에서는 세계 지도자들이 돈 숭배를 중단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더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붕괴 사고로 천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숨지자 사건 발생 후 처음 맞은 노동절에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노동을 ‘노예노동’이라고 규정하고 “이런 노예제는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것들에 반한다”고 했다. 또한 “수지타산을 맞추거나 이익을 추구하며 일자리를 주지 않거나 정당한 임금을 주지 않는 것도 하느님에게 반하는 일”이라고 일갈했다.

 

 부활절을 앞둔 성목요일인 3월 28일 교황 프란치스코가 로마 교외에 있는 카살 델 마르모 소년원의 부속 교회에서 세족식을 거행하면서 소년원생들의 발을 씻어준 뒤 입맞춤하며 강복하고 있다. 이 소년원생 중 상당수는 집시와 북아프리카 출신 이민자 등 이탈리아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며, 교황이 세족례를 해준 소년원생 12명중 2명은 여성 수감자다. 교황청 신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가 제공한 사진



그는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빈자의 성인’ 프란치스코를 본받기로 한 그는 자신의 삶도 그렇게 바꿔나갔다. 소박한 숙소가 대표적이다. 그동안 교황들의 숙소는 성 베드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교황궁으로 방이 12개가 넘는 저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바티칸을 방문한 주교, 신부, 수도자는 물론 일반 신자들도 게스트로 묵는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고 있다. 식사도 공동 식당에서 한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사목을 하고 있는 오랜 친구 엔리케 로드리게스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서 “사람들이 항상 나를 볼 수 있게 하고 아침에 함께 미사를 드리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성직자들에게 값비싼 차를 타지 말라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그의 취임 뒤 바티칸은 돈세탁 스캔들의 진원지로 비판받은 바티칸 은행에 대한 개혁에도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의 행보를 보면서 1962년 제2차 가톨릭 공의회 때 나온 ‘가톨릭 일꾼 운동의 목표와 방법’이라는 글이 떠올랐다. 나눔은 시혜가 아니라 가난한 이들에게 그들의 몫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선언한 이 글은 그의 취임으로 다시 주목받을 듯하다.

 

“(우리가 돌려줘야 할) 그 몫은 우리의 벽장 안에 있는 두 번째 외투이며, 우리 집에 있는 여유의 방이고, 우리의 식탁에 있는 또 하나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즉각 필요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은 그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불의한 일은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비판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예수의 말씀에 따라 전 재산을 이웃에 나눠주고 구도의 길을 선택한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청빈하게 살 것을 요구한다. 또한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라고 요구하고 있다. 늘 새로운 것에 주목하는 언론들이 조금씩 교황으로부터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지만 그를 바라보는 12억 명의 카톨릭 신자들은 매주 미사와 강론을 통해 교황이 전하는 메시지를 접할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끌어낼 지구촌의 변화가 기대된다. 

 

권복기 참여사회 편집위원, 한겨레 기자. ‘심플 & 소울’로 살려다가 느닷없이 디지털 분야에서 일하게 돼 여전히 ‘멘붕’을 겪고 있지만 하늘의 뜻이 있을 것으로 굳게 믿고 있음. 청년과 지역공동체를 화두로 남은 생을 살며 맘씨 좋은 할아버지로 늙는 게 꿈인 언론인.


<참여연대 발간 참여사회 2013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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