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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인문・사회・역사

원전과 방사능, 제대로 알고 무서워해야

by 파장 2013. 9. 6.


2011년 3월11일 발샐한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모습

 

원전과 방사능, 제대로 알고 무서워해야 


낮아지고 있는 일본 방사능 수치

 

믿을 만한 전문가집단인 일본 원자력정보자료실이 8월초 도쿄 신주쿠의 대기 중 방사선량을 정밀 측정했다. 낮은 곳은 시간당 0.06μSv(마이크로시버트), 풀밭 바로 위에서 잰 가장 높은 곳이 시간당 0.09μSv였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가 일어나기 전의 0.04μSv 안팎에 견주면 여전히 높은 상태지만, 도쿄의 방사선량이 완만하게 내려가고 있는 건 분명하다. 시간당 0.1μSv 안팎인 서울보다는 이미 한참 낮다. 후쿠시마 고농도 오염구역에서 피난한 9만여 명 가운데 5만 명가량은 앞으로도 한동안 고향에 돌아갈 기약이 없는 상태지만, 사고 원전이 내뿜는 방사성 물질은 사고 초기에 견줘 크게 줄었다. 대지진이 또 일어나 원전 건물이 붕괴하거나 원자로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지 않기를 기도한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2년 반 동안 도쿄에 살고 있는 내게는 몇 가지 새로운 생활습관이 생겼다. 내가 사는 고토구는 도쿄에서도 상대적으로 방사선량이 높은 곳이라 작년까지는 아이들을 오염물질이 고이는 물웅덩이 근처에 가지 못하게 했다. 지금도 수돗물은 식수로 쓰지 않는다. 후쿠시마현산 식재료는 사지 않는다. 기준치 이하라도 방사성 물질이  섞여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세슘(핵분열에 의해 생성되는 대표적인 인공 방사성 물질) 흡착 성질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야생 표고버섯과 블루베리, 차도 먹지 않는다. 방사능 내부피폭의 영향은 아직 명확히 해명되지 않은 부분이 많으니, 오염된 음식물의 섭취는 최대한 피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몇 차례 먹는다고 큰 탈이 나지는 않으니, 우연히 먹었다 해도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식재료를 공급받는 생활협동조합(팔시스템즈)의 안내 자료를 보면, 최근 검사에서 방사능이 검출되는 사례는 아주 드문 것 같다.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는 듯하다. 내가 대충 계산한 바로는 도쿄에서 지금처럼 1년간 지낼 경우, 흉부 시티촬영 한번 하는 것보다 훨씬 적게 방사능에 노출된다.

 


2013년 8월 26일 환경운동연합, 환경단체와 여성단체 회원들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학교급식 조례 제정을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수산물에 대한 우려는 여전

 

사실 수산물은 좀 걱정이 된다. 후쿠시마현뿐 아니라 그 주변 현의 민물에 사는 물고기는 오염도가 높아서 낚시가 금지돼 있다. 민물고기야 안 먹으면 되지만 바다 생선은 안 먹기 어렵다. 원전사고로 대기 중에 흩어진 방사성 물질은 상당부분 바다로 흘러들었다. 또 후쿠시마 주변 육지로 떨어져 내린 방사성 물질은 빗물을 타고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원전에서는 지금도 하루 400t씩 고농도 오염수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2011년 4월에 500t가량의 고농도 오염수가 바다로 유출됐고, 최근에도 오염수가 바다로 새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다 오염이 계속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오염도가 높은 해역의 어로 활동은 통제되고 있다. 생선에 대한 방사능 검사도 비교적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오염된 해역에 살던 물고기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서 잡히고, 오염된 생선이 검사를 빠져나가 유통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다른 일본인들도, 나도 아직은 생선을 크게 기피하지는 않지만 어린이들에게 장기간에 걸쳐 먹여야 한다고 생각하면 꺼림칙하다.



원전사고가 난 후쿠시마의 반대편에서 수입한 수산물에서도 미량의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었다.

 

과장된 위험, 오히려 진지한 성찰 방해할 수도

 

한국에선 이른바 ‘방사능 괴담’을 두고 말이 많은 듯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이런저런 소문을 뜯어보니 그저 웃음만 나온다.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은 한국에 사는 친척이나 지인을 만날 때, 이런 소문을 진실로 믿고 하는 얘기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많다고 한다. 위험을 크게 과장한 이야기는 사태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원전사고를 겪어본 일본인의 대다수는 장기적으로 원전을 없애자고 한다. 이미 겪은 고통만으로도 원전이 현세대와 우리 후손에게 장기적으로 얼마나 위험한지를 충분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당장 나와 가족에게 치명적인 위험이 올까만 걱정하는 태도로는 원전 문제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어렵다. 위험이 눈에서 사라지는 순간, 성찰도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먼저 원전과 방사능에 대해 정확히 알고 무서워하자.

 

 

정남구 <한겨레> 도쿄 특파원 <한겨레> 경제부 기자, 논설위원을 역임했고 2010년 2월 도쿄특파원으로 부임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취재한 『잃어버린 후쿠시마의 봄』(시대의 창, 2012)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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