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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카메라/포토에세이

박노예 사진 에세이 '다른길'

by 파장 2014. 5. 16.



노혜 시인, 사진가 

1957년 전라남도 함평출생,  시집 '노동의 새벽'으로 얼굴없는 시인으로 활동 

남한사회주의 노동자 연맹결성 1991년체포 무기징역, 1998년 석방 민주화유공자로 복권

2010년 사진전 <나 광야><나 거기서 그들 처럼>, 2014 사진전<다른길>

'나눔농부마을' 설립 사상과 혁명의 길을 걷고 있다.

 


그 길이 나를 찾아왔다.

그렇게 시작됐다. 나의 유랑길는,  한 시대의 끝간 데까지 온몸을 던져 살아온 나는, 슬프게도 길을 잃어 버렸다. 나 이 체제의 경계 밖으로 나를 추방시켜, 거슬러 오르며 길을 찾아 나서야 했다. '앞선 과거' 로 돌아 나오고자 하는 기나긴 유랑길이었다.

오래된 만년필과 낡은 흑백 필리 카메라를 하나 들고 내가 가 닿을 수 있는 지상의 가장 멀고 높고 깊은 마을과 사람들 속을 걸었다. 내가 찾 아간 마을들은 공식 지도에도 없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이 세계의 지도가 선명하고 첨단일수록 길은 하나뿐일 길. 그렇게 오래되고 다양한 삶의 길들은 무서운 속도로 잊혀지고 삭제돼가고 있었다. 차라리 간절한 내 마음속의 '별의 지도'를 더듬어 가기로 했다.

막막함과 불안과 떨림의 날들, 난 모른다. 언제였는지.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나는 모른다. 길을 잃어버리자, 그 길이 나를 찾아왔다. 아주 오래 전부터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길에서 만난 그 땅의 사람들이 나의 살아있는 지도였고 나의 길잡이였다.



I N D O N E S I A

신생(新 生)을 부르는 화산의 선물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화산이 있는 '불모의 땅' 인도네시아. 화산은 두려움과 동시에 비옥한 대지라는 위대한 선물을 준다. 최고의 커피인 '아체 가요 마운틴' 의 향기가 흐르는 나라, 최대의 열대산림이 숨쉬는 아시아의 허파, 1만 8천여 섬들이 별처럼 수놓은 나라, 이 풍요로 땅에서 다양한 민족들이 어우려져 살아간다.


Sukapura village, Probolinggo, East Java, Indonesia, 2013

화산의 선물  세계에서 화산이 가장 많은 나라, 인도네시아는 '불의 땅' 이다. 화산은 두려움과 선물을 동시에 준다. 화산이 폭발한 자리에 탄생한 비옥한 대지는 혁명 같은 격동이 준 위대한 선물이다. "우리는 화산의 선물로 살아가고 있으니, 나 또한 누군가의 선물이 되어야겠지요" 저 높고 깊은 곳의 농부는 허리 숙인 노동으로 이 무너지는 세상을 묵묵히 떠받치며 자신의 등을 딛고 인류를 오르게 하는 빛의 디딤돌만 같다.


Ulee Lheue village, Banda Aceh, Sumatra, Indonesia, 2013

파도 속에 심은 나무가 숲을 이루다 2004년 쓰나미가 아체 주민 수십만 명을 쓸어갔을 때 올렐드 마을은 가장 먼저 해일이 덮치고 가장 처참히 파괴된 거대한 폐허의 무덤이었다. 당시 올렐드 마을의 스물다섯 살 청년 사파핫은 손가락만 한 나무를 홀로 바닷물 속에 심고 있었다. "이 여린 바까오 나무가 지진 해일을 막아줄 순 없겠지요. 하지만 자꾸 절망하려는 제 마음은 잡아줄 수 있지 않을까요." 무릎을 꿇고 나무를 심던 사파핫은 끝내 파도처럼 흐느꼈다. 8년 만에 다시 찾아온 나는,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 가느란 바까오 나무가 피도 속에 자라나 숲을 이루었고, 그는 오늘도 붉은 노을 속에 어린 바까오를 심어가고 있었다. 절망의 바닥에서 자라나지 않은 것은 희망이 아니지 않느냐고, 파도는 끝이 없을지라도 나는 날마다 나무 심어갈 것이라고.


Lake Tawar, Takengon, Central Aceh, Sumatra, 2013

하늘 호수의 고기잡이  하늘빛이 맑은 물에 그대로 비쳐 '하늘 호수' 라 불리는 타와르 호수. 아버지는 고기를 잡고 아들은 낡은 배의 물을 퍼낸다. 아버지와 아들은 고요한 호수처럼 말이 없어도 서로의 몸짓에 의지하여 서로를 깊이 느끼는 듯하다. 부모란 이렇듯 아이와 한배를 탄 좋은 벗이 되어 그저 '믿음의 침묵' 으로 지켜보고 삶으로 보여주며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사이가 아니겠는가.


Gayo Mountain, Takengon, Central Aceh, Sumatra, 2013

커피 체리를 딸 때마다 이곳 토착민인 가요족 전통 모자를 쓴 마르야나(20)와 세 남매는 엄마 아빠를 따라 '리아 가요 커피' 농사를 이어가단다. "증조할머니가 심은 이 나무는 백 살이 넘었어요. 하얀 커피 꽃이 피 꿀벌이 날고 꽃잎이 떨어지면 빨간 체리 안에 녹색 커피 생두가 반짝요. 제 손으로 커피 체리를 딸 때마다 저 안개 너머에 지금 커피잔을 들고 미소짓는 누군가를 떠올리곤 해요." 내가 마시는 커피를 만드는 최초의 인간, 토박이 커피 농부들에게 경배를!


P A K I S T A N

내 마음에 만년설산 하나 품고  지구상에서 빛나는 만년설 봉우리를 가장 많이 품고 있는 나라. 만년설은 흘러내려 인더스 문명의 시원을 이루었고 위대한 간다라 문명을 꽃피웠다. 예전에는 천국이라 불리던 땅, 지금은 지옥이라 불리는 땅, 땅, 폭음과 불안과 긴장음이 흐르는 '국경의 운명'과 홍수와 지진의 재난, 13여 년에 걸친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침공까지 더해 어디에도 희망을 찾아볼 수 없는 슬픈 파키스탄, 그러나 모든 것이 무너져도 영혼이 무너지지 않는 한 결코 무릎 꿇릴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높고 춥고 험난한 땅에서도 굳센 인내심으로 노동하고 기도하고, 자급자립의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 나 또한 어둠이 내려와도 빛나는 만년설산 하나 가슴에 품고 가야 하리.


Nasirabad village, Northern Areas, Pakistan, 2011

구름이 머무는 마을  눈부신 만년설산의 품에 안긴 작은 마을. 이곳은 너무 높고 너무 춥고 척박한 땅. 구름도 고개 돌려 잠시 머물다 길을 떠난다. 손수 지은 흙집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부부는 "나라와 부모 선택해 태어날 수는 없지요. 사람으로서 '어찌할 수 없음' 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어찌할 수 있음' 은 최선을 다하는 거지요." 화롯불을 피워 따뜻한 차와 미소 건네고 가슴에 만년설 봉우리 하나 품고 가라며 빨간 사과 한 보따리를 안겨 주신다.


Dohak Baba Fakheer village, Punjab, Pakistan, 2011

밀밭의 빵 굽는 시간  파란 밀싹이 힘차게 돋아나고, 은빛 억새꽃이 바람에 날릴 때, 직접 씨뿌려 거둔 햇밀을 빻아 멋진 손 반죽 리듬으로 화덕 굽는다. 노랗게 익어 부풀어 오른 로띠를 꺼내면 지상에서 가장 건강하고 맛있는 갓 구운 빵 냄새가 그윽이 퍼져나가고 아이의 입가에는 흐믓한 미소가 번진다.


Dohak Khyber Pakhtunkhwa, Pakistan, 2011

파슈툰 소년의 눈동자  10년 넘게 계속되는 미국의 침공 속에 자라 파슈툰 아이들은 눈빛부터 다르다. 한 평생 겪을 고통과 비극을 다 보아버린 눈동자. 만년설산이 들어박힌 저 푸 눈빛, 아니 푸른 불꽃. 부모를 잃은 어린 가장인 알람샤를 안아주자 만년설이 녹아내리듯 소리 없이 긴 눈물을 흘린다. 나는 한번만이라도 이 아이들의 웃는 모습과 소리 내어 우는 모습을 보기를 바랐다. 눈물 젖 아이들의 눈동자에서는 나는 신을 본다. 거대한 성전이 아닌 이 눈동자에서 신을 만난다.


Barsat village, Gaguch, Pakistan, 2011

짜이가 끊는 시간  하루에 가장 즐거운 시간은 짜이가 끓는 시간. 양가죽으로 만든 전통 풀무 마기키자로 불씨를 살리고 갓 짜낸 신선한 양젖에 홍차잎을 넣고 차를 끓인다. 발갛게 달아오른 화롯가로 가족들이 모여들고 짜이 향과 함께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탐욕의 그릇이 작아지면 삶의 누림은 커지고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


L A O S

저 높고 깊은 곳의 농부들  산과 물의 나라 라오스, 메콩 강줄기가 여명의 숨을 쉬면 짙은 운무 속에 푸르스름한 산맥이 장엄하게 일어선다. 고르게 가난하기에 오히려 아름다운 풍경과 순박한 심성을 지켜온 나라. 오랜지빛 가사를 입은 승려들의 탁밧 행렬이 불자들의 가슴에 아침 태양을 떠오르게 하는 나라. 그러나 라오스는 세계 최대의 불발탄이 '전쟁의 슬픔' 으로 묻혀 있는 대지이기도 하다. 라오스의 고산족들은 오늘도 가파른 화전밭에서 서서 인류를 먹여 살릴 한 뼘의 농지를 맨손으로 넓혀가고 있다. 자신의 길을 걷다가 한계에 부딪혀 돌아서고 싶을 때, 꾸역꾸역 너의 지경地境을 넓혀가라고 격려하는 저 높은 곳의 농부들을 만나 다시 살아갈 힘을 받기를.


Pakmong, Luang Prabang, Laos, 2011

안개속의 라오스 여인  짙은 운무 속에 태양이 떠오르면 푸스름한 산맥들의 장엄하고 신비로운 풍경이 끝도 없이 펴쳐진다. 대지의 선물을 허리 숙여 거두는 날, 우리는 태양을 직접 바라볼 수 없다. 태양으로 길러지고 빛나는 것으로만 확인될 뿐. 사랑 또한 볼 수 없고 단지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 사랑으로 우리는 '덕분에' 살려지고 있으니.


Akha Phixor village, Ban Phapoun Mai, Phongsali, Laos, 2011

아카족 마을의 햇살 학교  지도에도 없는 산 속의 아카족 마을. 고운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아이들이 하나둘씩 짝을 지어 학교에 모여든다. 선생님은 아이를 등에 업은 동네 이모다. 아빠들이 짜준 나무 책상에 하나뿐인 책을 놓고 재잘재잘 웃음꽃을 피우다 공부 삼매경에 빠져든. 누가 공부 잘하냐고 물어보자 서로 어리둘절하다가 "다 잘하는데요. 이 친구는 셈을 잘하구요, 저 오빤 나무 타고 과일을 잘 따구요, 앤 물고기를 잘 잡구요, 전 노래를 잘해요. 아 참, 저 이쁜 언니는 최고의 날라리에요."


Akha Phixor village, Ban Phapoun Mai, Phongsali, Laos, 201

아침을 깨우는 부엌 불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고산족 마을의 아침은 어머니가 피우는 불빛으로부터 시작한다. 불을 피워 물을 끓이고 밥을 짓기 시작하면 가족들이 깨어나 모여들어 언 몸을 녹인다. 햇살이 길게 비추면 둥근 밥상에 둘러앉아 아침밥을 먹고 담소를 나눈 뒤 일터로 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빛이 있다. 순수한 헌신만큼 맑은 빛이 있다.


BURMA

깨끗한 '밥'과 불심의 '꽃'  세계 최장기 군부 독재의 총칼 사이로 피어나는 미소의 나라. 그러나 굳게 닫혀있던 아시아의 마지막 빗장이 풀리자, 버마에는 지금 느슨해진 독재권력의 자리에 더 무서운 자본 독재가 들어서고 있다. '푹풍 변화' 앞에 흔들리는 민초들의 삶은 그럴수록 더 뿌 깊은 마음의 힘을 품어간다. 가난 속에서도 소득의 1/10을 들여 아침마다 불전에 꽃을 바치는 사람들. 사람은 밥이 없이는 살 수 없지만 영혼이 없는 밥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미소로 환대하는 사람들. 고난 속에서도 인간의 신비를 비춰주는 '아웅더비 버마' - 새 희망의 버마. 그 순수한 미소와 빛나 슬픔의 힘으로 우리의 '밥'에서도 '꽃'이 피어나는 대지의 노래가 울리기를.


Lake Inle, Nyaung Shwe, Burma, 2011

'버마의 심장'이라 불리는 인레 호수 고원 지대에 자리한 '산 위의 바다' 이다. 푸르스름한 물안개 속에 태양이 떠오르면 인레 어부들은 고요한 호수 위를 걷듯, 가만가만 두 발로 노를 저어간다. 인레 호수의 고기잡이는 천지인이 하나 되어 이뤄내는 부드럽고 치열한 떨림의 몸짓이다. 자연이 길러준 것을 오늘 하루 필요한 만큼만 취하는 깨끗한 노동은 감사한 밥이 되고 평정한 영혼이 된다. 작은 그물을 당겨 은빛 물고기를 거두어 받는 시간, 어부의 노동은 우아 춤이 된다.


Nyaung Shwe, Burma, 2011

사탕수수를 수확하는 소녀   버마의 3월은 사탕수수 수확이 한창이다. 키 큰 사탕수수밭을 날 랜 전사처럼 누비며 검무를 추는 듯 섬세한 손놀림으로 종자를 수확하는 마 틴 짜우(17). 불볕 아래 거칠고 고된 하루 노동으로 1,500원을 번. "이 줄기를 땅에 심으면 마디에서 수직으로 새싹이 돋아요. 첫 비가 내리면 키가 훌쩍 자라고 달콤한 설탕이 나오지요. 꿈결에도 흙에 묻혀 다시 돋는 푸른 바람 소리를 듣곤 해요. 그래서 전 결코 꿈을 포기하지 않아요." 달콤한 설탕 한 알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고가 배어 있는지.


Lake Inle, Nyaung Shwe, Burma, 2011

노래하는 다리  인레 호수 마을과 고산족 마을을 이어주는 이 다리나무는 매 우기 때마다 휩쓸려 나간다. 장마가 끝나면 여러 소수민족이 모여 다시 다리를 세우고 잔치를 벌린다. 해마다 새로 짓는 나무다리의 역사를 따라 서로의 믿음 또한 시간의 두께로 깊어진다. 오늘도 이 다리를 오가는 다양한 발걸음들은 마치 오선지 위에 어우러진 음표들처럼 가슴 시린 희망의 노래를 연주하고 있. '함께하는 혼자' 로 진정한 나를 찾아 좋은 삶쪽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에게는 분명, 다른 길이 있다.


I N D I A

디레 디레 잘 레 만느  극단의 두 얼굴을 지닌 땅 인디아. 히말라야 만년설산과 라자스탄 사막이 동시에 펼쳐지고, 첨단 IT산업 도심에 느릿느릿 암소가 걸어가고, 아쉬람의 고요한 명상 속에 카슈미르에서는 계엄군의 총성이 울리고, 핵무기를 갖고 성장 ㅣㄹ주를 하지만 최악의 카스트인 불가촌첨민과 빈민들이 신음하는 나라. 그 하늘과 땅 사이의 광활한 대지 위에 너무도 다양한 삶들이 굴러다. 그 모든 걸 지탱하는 건 75%에 달하는 농민들, 위대한 여성 농민들이다. 성스러움과 더러움을 모두 품고서도 자신이 가야 할 곳을 향해 유장히 흐르는 저 갠지스 강물처럼, 우리의 삶도 굽힘 없이 흘러가기를. '디레 디레 잘 레 만드' 마음아 천천이, 천천이 걸아라.


River Betwa, Orcha, Madhya Pradesh, India, 2013

디레 디레 잘 레 만느  가장 높은 히말라야 만년설산에서 흘러와 가장 낮은 평원까지 젖 물려주는 인디아의 강. 바라나시로 순례를 가는 붉은 사리 옷의 여인들과 흙먼지 묻은 흰옷의 사내들이 강물을 만나자 발길을 멈추고 땀을 씻고 빨래를 한다. "디레 디레 잘 레 만느, 마음아 천천이 천천이 걸어라. 부디 서두리지도 말고 게으르지도 말아라. 모든 것은 인연의 때가 되면 이루어져 갈 것이니.


Gafa village, Rajasthan, India, 2013

인디고 블루 하우스  인디아 여성 농민은 누구나 최고의 건축가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손수 디자인 집을 짓고 살아가면서 불편하고 아름답지 않는 것은 고쳐나간다. 한 마을에서도 똑같은 집이 하나도 없는 개성이 담긴 집. 부드러운 살결 같은 같은 흙벽에 청명한 하늘빛을 닮은 인디고 블루를 칠학고 흰 쌀가루를 개어 그림 그린다. 물 항아리를 이고 든 여인이 자신이 다져 만든 인디고 빛의 계단을 사뿐사뿐 걸어 오른다.

Patha Karka village, Uttar Pradesh, India, 2013

물 항아리 머리에 인 여인의 걸음  물 항아리 멀리에 인 여인의 걸음으로 깨어나 인디아의 아침. 묵직한 물 항아리를 이고 걸으면 등 허리와 목선이 곧게 펴지고 단전에서 부터 온 몸에 기운이 차오르는 최고의 일상 요가가 된다. 인디아 여성의 늘씬한 몸매와 우아한 자태는 날마다 물 항아를 이고 걷는 노고의 선물인 것만 같다. 고귀한 것은 늘 무거운 것, 고귀한 짐을 아름답게 이고 지고 가는 자가 고귀한 사람인 것을.


T I B E T

남김없이 피고 지고  '인류 정신의 지붕' 티베트. 야크 유과 보리 농사와 티베트 불교는 티베트인들의 '삶의 세 기둥' 이다. 그러나 1950년 중국에 강제 점령된 후 수 많은 사람이 죽어갔고, 급속한 개방에 저항도 전통도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다. 무언가 급속히 열리면 급속히 무너진다. 그럼에도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높은 곳에서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자세로 오체투지 순례길을 걸어가는 티베트인의 모습은 절로 고개를 숙이게 한다. 선물 받은 하루의 생을 다 소시키, 텅 빈 충만의 정신적 풍요를 살아가는 사람들.우리는 이 지상에 잠시 천막을 친 자이니, 삶도 초원의 꽃처럼 남김없이 피고 지고 하루하루 사랑으로 나를 살라가는 생의 도약을 이루기를.


Langmusi, Amdo Tibet, 2012

남김 없이 피고 지고  야크 젖을 짜던 스무살의 엄마가 아이에게 젖을 이러 천막집으로 들어간다. "나는 이 지상에 잠시 천막을 친 자이지요. 내가 떠난 자리에는 다시 새 풀이 돋아나고 새로운 태양이 빛나고 아이들이 태어나겠지요." 충만한 삶이란, 축築이 아닌 소멸에서 오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 삶의 목적은 선물로 받은 하루하루를 남김없이 불살라 빛과 사랑으로 생의 도약을 이루는 것이 아니던가.


Langmusi, Amdo Tibet, 2012

유목민의 대이동  온 가족이 양과 야크를 몰고 새로운 초지를 향해 떠나는 중이다. 한곳에 오래 머물면 초원은 황폐한 사막이 되고 말기에. 그런데 지금 티베트 초원이 아스팔트 도로로 뒤덮여가고 있다. 중국 정부의 급속한 개방 정책으로 군사작전하듯 고속도로가 뚫리고 자본과 사람이 마구 소통되면서 티베트 전통 삶이 무너지고 있다. 무언가 열리면 무언가 무너지는 법이다. 지금 시대, 닫힘보다 더 무서운 건 열림이고 소통이고 접속이다.


Jiu pu huang he di yi wan, Ruoergai, Amdo Tibet, 2012

주인을 위로하는 말  황하가 처음으로 몸을 틀어 아홉 번 굽이쳐 흐르는 황하구곡제일만 언덕에서 관광객을 말에 태워 산정 전망대까지 데려다 주는 티베트 여인. 종일 숨찬 걸음에도 손님을 태우지 못한 모양이다. 집에서는 가족과 아이들이 기다리는데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붉은 석양이 무거워 여인은 능선에 주저않아 힘없이 고개를 떨군다. 오랜 동료이자 식구인 말은 손님을 태우지 못한 자신의 등이 미안해서인지 고개 숙여 주인을 위로한다.


Langmusi, Amdo Tibet, 2012

나날이 새롭게  여명은 생의 신비다. 우주의 순환은 날마다 한 번 해가 뜨고 한 번 해가 지고, 우리는 오직 하루 치의 인생을 새로이 선물 받는다. 이 대지의 삶은 순간이고 미래는 누구도 모른다. 하여 삶은 일일일생(一日一生)이니. 오직 하루의 생을 남김없이 불사르고 지금 여기서 자신을 온전히 살아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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