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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장애인체육

2015 두바퀴로 달리는 사랑- 광주에서 강진까지 남도삼백리

by 파장 2015. 10. 20.


2015 '시각장애우와 함께하는' 남도삼백리

제9회 두바퀴로 달리는 사랑


1박2일 행복나눔 자전거여행 광주↔강진 110km, 

10.17~10.18


안개가 짖게 깔린 아침, 시각장애인 시설인 광주 영광원을 다시 찾았다. 올 해 1박2일 자전거 여행은 광주에서 강진까지(110km) 달리는 남도 삼백리 길이다. 출발에 앞서 행사 준비에 분주한 '두바퀴 사랑회' 회원들과 파일럿(봉사자)들에게 인사를 건냈다. 영광원에서 10시 출발해, 송정리을 빠져나와 23번 국도를 따라 나주, 영산포, 영암, 성전을 거처 강진만 해안도로를 따라 숙소인 강진 베이스볼 캠프에 도착했다.


세상이 보이지 않는 모습은 어떨까? 암흑처럼 캄캄한 밤일까? 순백의 모습일까? 벌써 10년째, 난 일년에 한 두번 시각장애인들과 마음을 나누고 있다. 그들은 세상을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귀, 코, 혀, 몸, 의지와 소리, 냄새, 맛, 촉감 등의 감각으로 그들만의 세상을 투영해서 보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내 모습은 어떻게 그려질까? 아마도 내 목소리와 몸의 체온, 냄새 등으로 나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짧고, 긴 오리막이 여러군데 있는 23번 국도길은 자동차가 빠르게 달리고 있어 자전거 타기 위험하고 힘든 길이다. 두개의 마음과 두개의 몸이 합체되어 오르막도 내리막도 거침없이 길을 달린다. 오르막을 오를 때 두개의 거친 숨소리는 성능 좋은 오디오에서 나오는 스테레오 사운드를 만들고, 들숨과 날숨의 어지러움 속에서도 네개의 다리는 힘차게 페달을 돌리며 오리막을 오른다. 그리고 힘들게 올라온 오르막 길에 대한 보상으로 시원스럽게 달릴 수 있는 내리막을 내어 준다.


강진까지 가는 남도 삼백리 길은 공감과 소통의 길이었다. 봉사, 장님, 맹인 등으로 비하 받던 사람들이 오늘은 2인승 자전거를 타고, 두바퀴로 달리면서 세상과 소통하고 사람들과 공감한다. 이런 자전거 행렬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봉사들을 데리고 머 하는 짓이냐" 며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길위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은 화이팅을 왜처주고 힘내라고 다둑여 주었고 벅찬 감동을 받았다. 줄수 있는 마음과 나눌수 있는 마음들이 모여서 불가능 하게만 보이던 길을 가능하게 만들수 있었다.

자동차 소음이 거슬리던, 23번 국도를 버리고 성전면을 지나서 지방도로 들어섰다. 아직 물들지 않는 은행나무 가로수들이 두바퀴 행렬을 위해 양옆으로 도열해 열병식을 펼치고 있다. 지나는 길 옆으로 추수를 기다리는 남도의 들녁에는 가을 햇볕을 받아 황금빛 번득이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그들도 파일럿(봉사자)들의 설명을 듣고 은행나무 열병식과 황금 들판의 풍경을 그렸을 것이다. 

강진에 도착한 자전거는 다산 유배길 해안도로를 따라서 강진만의 뻘냄새를 맡으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200여년전 다산이 주군 정조의 죽음과 함께 유배객의 신분이 되어 나주 밤남정 주막에서 형 정약용과 이승에서의 애절한 마지막 밤을 보내고 홀로 이 유배길을 걸었을 모습을 상상하니 인생의 무상함에 눈길이 절로 바다로 고정 되었다.  그날 밤 나는 다산의 유배길을 뒤따르던 꿈을 꾸었다. 권력에서 버림 받고 많은 '애별리고(愛別離苦)을 격고 가는 유배길이였기에 애절함이 더했을 것 같다. 

강진의 아침은 조용했다. 복도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침을 소박하게 끝낸 후, 대열을 정비하고 길을 준비한다. 두바퀴에 탈 두사람은 2인승 자전거을 끌고 다시 길로 나왔다. 두박퀴는 '가우도'로 방향을 잡았다. 물이 들어찬 바다는 갯뻘을 감추고, 약한 안개을 길에 깔고 있었다. 두바퀴는 두사람의 호흡이 척척 맞아서 어제 보다 더 부드럽게 해안도로를 따라 흘러갔다. 가우도까지 긴 출렁다리가 이어져 있었다. 바다를 및에 두고 두사람이 출렁다리 위를 걸었다. 팔을 잡고 있는 사람은 귀을 열어 설명을 들었고, 그 모습을 그려보고 있다. 


가우도는? 강진읍 보은산이 소의 머리에 해당되고, 섬의 생김새가 소의 멍에에 해당 된다고 해서 '가우도'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가우도는 강진군 도암면 망호에 속한 강진만의 8개 섬 가운데 유일한 유인도로 현재 14가구가 거주 하고 있다. 가우도 출렁다리는 섬 반대편에 마량면 방향으로 같은 다리가 또 하나 이어져 있다.

돌아가는 길, 강진읍까지 해안도로 길을 따라 어제 왔던길을 되돌아 간다. 두바퀴에 탄 두사람의 표정에서 여행의 끝에서 만나는 벅찬 행복감을 망원렌즈를 통해 보았다. 강진읍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청자박물관을 찾았다. 눈으로 아름다운 청자의 모습과 가마터 등을 볼 수는 없지만, 봉사자들의 팔을 잡고 걸으며 그 모습에 대한 설명을 듣고 청자의 모습과 가마터을 그렸을 것이다. 


눈먼자를의 세상에 앞이 보이는 사람들이 들어와 그들과 10년의 시간동안 남도 이곳 저곳을 함께 달리며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눈먼자들은 두바퀴로 달리며 세상을 보았을 것이고, 아마도 그 모습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내 사진을 눈먼자들이 물리적으로 볼 수 없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사진에 관한 설명을 듣고 나면, 마음속으로 강진의 남도 삼백리 자전거 여행길을 떠올리며 추억할 것이다. 광주에서부터 강진까지의 1박2일 자전거 여행길에 내가 보고 만났던 길과 그들이 감각과 마음으로 보았을 길의 모습은 같았을 것이다.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던 은행나무 가로수 길, 추수를 기다리는 남도의 황금들판 길, 다산의 애절한 유배길... 어느 고즈넉한 고택의 가을 풍경처럼 그들에게도 남도 삼백리길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Photo by - 이진기 jingi196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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