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8∙15 해방의 순간
1945년 8월 15일, 해방은 꿈같이 찾아왔지만, 해방된 줄 모르는 한국인이 많았다. 15일 오전, 서울 시내 여러 곳에 “본일 정오 중대 방송, 일억 국민 필청必聽” 이라고 쓰인 벽보가 붙었지만, 그것을 유심히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12시 일왕의 방송도 무슨 소린지 알아듣기 어려웠고, 당시 라디오를 가진 한국인도 많지 않았다.
해방을 맞이한 소년의 감격
나는 참으로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극장 앞길을 메운 군중은 수백 명을 넘었는데, 이들은 언제 준비했는지 조선독립만세란 걸개그림을 앞세우고 만세 삼창을 외치면서 행진하고 있었다. 그들의 물결 속에서 나는 태극기를 처음으로 보았다. 감추어두었던 것인지, 아니면 항복을 알고 난 후에 급조한 것인지는 몰라도 일왕 담화 몇 시간 후에 그 깃발이 휘날리게 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 죽은 듯이 일제 정치를 인내해온, 바보스럽게만 조선인들에게 영원히 불타는 애국심과 민족정신이 엄연히 살아 있다는 역사의 증언을 나는 그 순간 바로서 알아차리게 되었다. 나는 그 후 여러 날동안 잠을 잊은 채 그 흥분의 도가니 속에 빠지게 되었다. -임명방, ‘내가 겪은 해방’ <황해문화> 1994년 겨울
1945년 9월 9일 오후 4시, 조선 총독부 제1회의실에서 아베 노부유키 총독이 미 제24군단의 존 하지 중장과 제7함대 사령관 킨케이드 제독 등 미군 장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 문서에 서명을 했다. 이미 1주일 전 동경만에 정박한 미주리 함상에서 공식적인 항복 조인식이 있었지만, 이날 항복문서의 효력은 38선 이남에만 적용된다는 것이 달랐다.
아베 노부유키 총독이 항복 조인식에서 항복 문서에 서명한 후, 총독부 앞뜰에서는 8월 15일 일왕의 항복 선언 뒤에도 23일간이나 게양되어 있던 일장기가 내려지고 성조기가 올라갔다. 한반도의 통치권이 일본 제국주의의 총독부에서 미군정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1945년 9월 초부터 미군은 한국에 주둔하기 시작했다.
일제가 이 땅에서 사라진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민족은 충분히 기뻤을 뿐이다. 38도 선 이북이든 이남이든 기쁨의 강도는 같았다. 우리 민족은 거리로 뛰쳐나와 만세를 불렀고 일본군을 내몰고 대신 진주해 온 해방군인 미군을 환영했다.
8월 15일은 한국인들에게 일제의 강제점령에서 해방(解放) 되는날 이지만, 세계사적으로는 세계 제2차대전 종전(終戰)이기도 하다. 우리의 해방이 세계 제2차대전이라는 전쟁의 결과물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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