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기 그림으로 세상읽기
미술 에세이스트 선동기 씨는 미술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네이버 파워블로그 ‘레스카페’의 주인장으로 잘 알려져 있고, 『처음 만나는 그림』 『나를 위한 하루 그림』 『그림 속 소녀의 웃음이 내 마음에』 등의 미술 관련 대중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각오
우리는 그대로인데 시간만 정신없이 흐른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해가 바뀌었으니까 시퍼런 각오 한 두 개는 가슴에 담아야 할 것 같습니다.
1874년 4월15일부터 한 달 간 프랑스 파리 시내에는 ‘무명화가 및 조각가, 판화가 연합’ 이름으로 전시회가 열립니다. 예술가 30명의 작품 165점이 출품된 이 전시회는 훗날 ‘제1차 인상파 전시회’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공식 살롱전에서 낙선하던 젊은 예술가들의 모임에서 한 이 전시는 화가 르누아르의 형 에드몽 르누아르가 작품 전시 기획을 맡았었지요. 에드몽이 모네에게 ‘이 작품 제목을 무엇으로 할 것이냐’고 묻자 모네는 ‘그냥 인상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때요?’라고 답했습니다. 이 작품을 본 화가이자 미술 평론가 루이 르로이가 붙여 주었던 ‘인상파’라는 이름은 기존의 화풍에 혁명을 꿈꾸던 젊은 예술가들을 비꼬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미술사의 거대한 봉우리 중 하나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의 어법을 파괴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지요.
아, 정말 장쾌한 풍경입니다. 곳곳에 잔설이 남아 있는 능선과 끝없이 흐르는 구릉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 보면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에 이르게 됩니다.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대기가 햇빛을 담고 있어서 그 경계가 모호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선은 그 너머를 향하게 됩니다. 한 쪽 발을 앞으로 내밀고 있는 사내의 자세가 오연(傲然)하게 느껴집니다. 이 높은 곳에 이르렀으니 세상을 향해 한 번 외쳐 볼만도 합니다. 미국 풍경화가 샌퍼드 기퍼드는 우리에게 ‘자, 그대는 무엇을 보고 있나요?’라고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 있는 곳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겠지요.
베를린-포츠담 철도가 개통된 것이 1838년이니까 아돌프 멘젤의 이 작품은 10년 뒤 모습을 담은 것이 됩니다. 철도가 열리면서 미술사에는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하지요. 현장의 빛을 중요시하던 인상파가 철도의 발달과 함께 널리 퍼져나간 것인데, 기차를 타고 쉽게 야외로 나갈 수 있게 된 화가들은 자연스럽게 좋은 풍광을 가지고 있는 기차역 근처에 모여 자신들만의 둥지를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파리 근교의 바르비종이나 영국의 콘엘 같은 곳이 철로가 열리면서 화가들이 모여든 곳입니다. 철도는 사람과 물자 그리고 인상파도 싣고 달린 셈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집콕’ 생활이 일상이 되었다고 해서 상상마저 집 밖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아니지요.
미국의 화가 찰스 호돈의 작품 속 청년의 큰 눈에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간다는 두려움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굳게 다문 입술과 장비를 든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두려움의 근원은 그 동안 나를 지켜 주었던 것들이 더 이상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낯선 곳, 새로운 환경과 끝없이 만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세파(世波)는 말 그대로 파도가 치는 세상입니다. 그 곳에 몸을 던지고 살아남는 것도 제 몫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이제 출발 준비가 끝났습니다!’라는 표정의 청년에게서 2021년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됩니다.
<출처 : 민중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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