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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그림・전시

나는 어제나 네 편이야

by 파장 2012. 7. 3.

바네사 벨<욕조> 1917년 캔버스에 유채 180.3&times;164.4 런던 테이트 갤러리

욕조

벨의<욕조>작품에서 뻣뻣하게 정면으로 서 있는 여인의 모습은 관능적인 나체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림 속 여자는 욕조 옆에 서서 자기 생각에 몰입한 머리를 따고 있다. 전체적으로 침침한 색조의 그림 속에서 중앙에 놓인 꽃병이 유독 뚜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 꽃병은 마치 여인의 심장 이기라도 한 듯 새빨갛다. 여인도 꽃처럼 마음 둘 곳 없이 지쳐버린 상황인 것 같다.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Mircea Eliade)에 의하면, 물에 들어가는 것은 존재하기 이전의 미분화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 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런 상징성 때문에 물은 인류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신성하게 여겨졌다. 물을 이용한 의식은 비록 각 지역의 문화와 종교에 흡수되기는 해도, 결코 그 맥이 끊기는 일이 없었다. 가령 몸을 물에 담그는 세례는 육신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의미를 지닌 의식이다. 그런가 하면 인도의 갠지스 강물에 몸을 담그는 의식을 통해 병이 치유되고 영혼이 자유로움을 얻으리라고 믿는다.

벨의 <욕조> 작품에서 여인이 들어가려고 하는 욕조는 양수로 가득 찬 둥그런 어머니의 자궁 인지도 모른다. 목욕은 물을 통해 몸과 마음의 더러움과 슬픔을 녹여버리고 깨끗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침수의 체험을 하는 것이다.

 

존 슬론(John Sloan) <일요일, 머리를 말리는 여자들> 1912 캔버스에유채 65&times;80 매사추세츠 애디슨 미국미술 갤러리

일요일

존 슬론의<일요일 머리를 말리는 여자들> 작품에서 여자들은 아마도 근처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인 듯 보인다. 주중에 고달프게 일을 했을 것이고, 경제적으로 또는 심리적으로 편하지 않는 상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날씨 좋은 일요일, 옥상에 올라가서 같이 빨래를 널어놓고, 함께 젖은 머리를 말리는 모습이 상쾌하고 즐거워 보인다. 머리의 물기를 터어 내듯 고민도 울적함도 털어내 버린다. 눅눅한 슬픔은 웃음소리를 따라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이제는 정말 보송보송하고 개운하다.

 

 

그림에, 마음을 놓다 (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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