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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음악・공연・여행

광주천 이야기

by 파장 2022. 4. 6.

지금은 샛강 중 하나일 뿐이지만

도시는 강을 끼고 형성되고 발달해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강이 있으면 식수공급이 원활하고 농사짓기 편한 것이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고 항공이나 육상교통이 발달하기 전엔 강을 이용한 교통과 운송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을 테니 아무래도 강을 끼고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었을 것이다. 

광주천의 현재의 모습

그래서 파리는 세느강을 끼고 형성됐고, 런던은 템즈강을 따라 발달했다. 서울은 한강을 기준으로 강남과 강북, 강동과 강서로 도시로서의 살을 붙였다. 광주 역시 영산강 이라는 큰 강이 도시 외곽을 에워싸고 돌아나간다. 영산강은 나주평야와 영산포를 지나 목포에서 서해와 만난다.

하지만 광주사람들은 영산강보다는 '광주천(光州川)'을 더 친밀하게 생각한다. 말 그대로 영산강은 먼 강이고, 광주천은 추억이 알알이 서린 내(川)이기 때문이다.

광주천의 발원지는 무등산 남서 기슭에 있는 샘골이다. 무등산에서 그 줄기를 이룬 광주천은 광주 동쪽에서 서쪽으로 반원을 그리듯 23km를 곡류하며 도심 한복판을 관통한 뒤 서구 치평동과 광산구 우산동 사이에서 영산강으로 합류해 바다로 나아간다. 

기록으로 남아있는 '광주천'의 가장 오래된 이름은 건천(巾川). 16세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은 "건천(巾川)은 고을의 남쪽 5리에 있으며, 무등산 서쪽 기슭에서 발원하여 서북쪽 칠천(漆川)으로 흘러든다"고 광주천을 소개했다. 

1960년대 광주천 모습

광주천이란 명칭은 1916년 6월 일제가 전국의 하천 명칭을 정리해 고시하면서부터 사용됐다. 일제는 전국의 주요하천을 조사하면서 "하천 이름을 정하기 곤란할 때는 그 발원지가 되는 유명한 산이나 하천이 통과하는 큰 고을의 이름을 따서 명칭을 정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이 지침에 따라 정해진 이름이 바로 '광주천'이다. 

그렇다면 '광주천'이란 이름으로 정해지기 전까지 광주천은 어떻게 불렸을까. 조광철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옛 사람들은 광주천을 두고서도 동네마다,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고 전한다.

광주천 발원지에서 가까운 동네에 사는 나이 든 주민들은 지금도 광주천을 용추천(龍湫川) 혹은 용추계곡이라고 부르고 있다. 용의 형상을 하고 기세 좋게 치달리는 강이라는 뜻이다. 발원지인 무등산 남서 능선을 타고 가파르게 흘러내리니 어찌 용을 닮지 않았을까.

 

광주의 젖줄'이었던 광주천... 그곳에 담긴 광주이야기

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금동에 살았던 이들은 광주천을 '금계(錦溪)'라 불렀다. 말 그대로 강물이 비단결처럼 곱게 흘러서 그렇게 불렀다. 금동이라는 지명 역시 옛 지명 금계리(錦溪里)에서 왔다. 

지금의 불로동 즈음에 다다르면 사람들은 광주천을 조탄(棗灘)이라 불렀다. 어느 강, 어느 내가 '대추여울'이라는 멋진 이름을 지녔든가. 학자들은 대추여울의 유래를 옛 문헌에서 유추한다. <여지승람> 등 옛 문헌은 "광주에서 대추(대조大棗)가 난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문학적 상상력을 조금만 발휘해도 '대추여울'이란 이름이 제법 어울린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노을이 질 무렵 불로동 인근 광주천은 잘 익은 대추처럼 황홀한 채색을 한다. 농익은 대추 빛깔을 한 광주천의 석양이 너무 고와 조탄, 대추여울이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마침내 광주천은 '한강'이라 불린다. 북구 임동 무등경기장 근처에 이르면서다. 강폭이 큰 강처럼 넓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들은 그래서 대강(大江)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렇게 강폭이 넓어진 까닭은 서방천과 합류하기 때문. 

이 일대에서 광주천이 '한강'이라 불리었던 것은 매우 오래전 일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1980년대에 발행된 <한국지명총람>에서도 이 구간을 흐르는 광주천을 '한강'이라 표기하고 있다. 일제시대인 1925년에 발행된 <광주읍지>는 "'대강교(大江橋)'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대강교'는 '큰 강 혹은 한강에 놓은 다리'라는 뜻이니 서울이 아닌 광주에도 한강이 흘렀던 것이다.

지금은 영산강을 이루는 600여 개의 샛강 가운데 하나일 뿐인 광주천. 지금은 도심을 관통하는 폭 60여 미터의 작은 천인 광주천 이지만 광주천은 불과 30, 40 전만 하더라도 광주의 젖줄이었다. 더불어 광주의 근현대사와 함께 했다. 시대와 함께 흘러가고 있는 광주천을 따라 걷고자 한다. <글 오마이뉴스 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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