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존재의 정체성 |필립 칼데론의 <깨어진 맹세>
필립 칼데론<깨어진 맹세> 1856 캔버스에 유채 91×67 런던 테이트 갤러리
과거에 여자는 부모, 남편, 자식에 의해 운명이 만들어지고 운명에 복종하는 것이 최대의 미덕이었다. 세상은 남자에 의해 움직이고 그들은 여자의 보호자로서 소유권을 주장했다. 여자는 자신의 운명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기보다는 절대 권력자 남자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었고 그들에게 복종함으로써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 신세에서 벗어나 풍요롭게 생활할 수 있었다. 여자는 가정과 재산에 대한 권리가 전혀 없이 남편의 후덕한 마음만 기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필립 칼데론(1833~1893)의 <깨어진 맹세> 이 작품은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 영국에서 1857년 결혼법 통과로 여성이 이혼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생겨나 결혼한 여성에 대한 법적 지위가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재산이 없는 여성은 남편에게 이혼을 당하는 순간 신데렐라에서 바로 하류층으로 추락했다.
<깨어진 맹세>는 통속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여성의 처지를 실감나게 표현했다. 화면 정면에 있는 여성은 남편에게 버림받고 문 밖에 숨어 있다. 담 넘어 얼굴이 언뜻 보이는 남자가 그녀의 남편으로서 옆에 서 있는 여인에게 장미꽃을 건네고 있고 그녀의 손에는 반지와 팔찌가 끼워져 있다. 반지와 팔찌는 담 안에 있는 두 사람이 결혼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정면의 여인의 손가락에 반지가 끼워져 있어 유부녀임을 암시하고 있지만 담에 기대어 그들의 모습을 숨어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그녀의 자세는 남편에 의해 버림받았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화면 아래 시든 아이리스는 깨어진 결혼을 암시하고 있다. 아이리스의 꽃말이 잃어버린 사랑이다.
필립 칼데론의 <깨어진 맹세>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가장 인기 있는 작품 중에 하나다. 이 작품은 유치한 드라마 같은 주제로서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아 판화로도 제작되었다.
성적만족을 찾아나선 여성 |에드워드 호퍼 <햇빛 속의 여성>
에드워드 호퍼<햇빛속의 여성> 1961 캔버스에 유채 101×152 뉴욕 휘트니 미술관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보바리 부인, 차탈리 부인 등 부인 시리즈에 등장하는 여성은 존재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있었다기보다는 성의 정체성에 갈등을 겪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집을 나서야만 했다. 여성이 성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보다는 남자의 성적 만족을 주는 하찮은 존재로만 인식되었던 것이, 부인 시리즈에서 여성도 성의 만족을 느낄 줄 아는 존재고 그것을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외치면서 자유롭게 남편 외에 다른 성을 찾아 나선다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것이 성의 정체성에 대해 갈등을 겪고 있는 문학 작품 속 여성의 모습이다.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성에 대한 인식도 바뀌었다. 현대 여성은 그런대로 성에서 해방되었고 많은 작품 속의 여성은 지금까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하게 된다.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햇빛 속의 여성>은 성의 정체성에서 벗어난 여인을 표현했지만 완벽하게 자유로운 모습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 벌거벗은 여인은 사랑이 끝난 후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당당하게 햇살에
몸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어떤 부끄러움도 느끼지 못하는 여인의 손가락에는 피우고 있는 담배가 들려 있지만 그림자는 그녀의 전신을 그대로 나타내지 않는다. 가늘고 뻗은 그림자는 그녀의 내면이다. 앞은 당당하지만 내면은 아직도 성의 정체성에 갈등을 빚고 있다는 것을 그림자를 통해 호퍼는 암시하고 있다.
화면에서 여인이 서 있는 공간이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지만 방의 대부분은 어둡다. 어두운 공간은 여인이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만 그 경계가 보호하다. 여성의 보호자는 존재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보호해야만 한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에드워드 호퍼는 미국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화가다.
명화속의 삶과 욕망 박희숙 2007
마로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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