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예술/그림・전시

권력자의 여자들

by 파장 2012. 7. 2.

방금 사랑 받은 여인 <프랑수아 부셰의 오달리스크>

 

프랑수아 부셰<오달리스크> 1745 캔버스에 유채 51×64 파리 부브르 박물관

 

력을 지닌 사람들 혹은 재력을 지닌 사람들의 미적 수준(?)은 매우 높다. 권력 혹은 재력가 주변의 여인들은 참으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보통 아름답다는 찬사만 가지고는 모자를 정도다. 그렇지만 아름답다고 다 권력자의 사랑을 받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지만 사랑은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랑 받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권력자 옆에 있으려면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이겨야 한다.

오랜 세월 동안 권력자들에게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아름다운 여인들이 불나방처럼 모여들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나누어 갖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권력을 같이 휘두르고 싶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들 주변은 그 시대에 가장 아름다운 여인들로 넘쳐나고 있다.

아름다운 여성이 절대 권력자의 눈에 띄기 위해서는 탁월한 미모는 기본이지만 미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무언인가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 이슬람의 권력자 술탄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했던 오달리스크처럼.

엉덩이를 들어낸 채 뒤돌아 보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의 표정은 여자들의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승리한 당당함이 서려있다. 프랑수아즈 부셰(1703~1770)의 이 작품은 당시 유행했던 오리엔탈리즘의 취향과 맞아 떨어지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의 이국적인 소재는 화가와 일반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특히 절대 권력자 술탄의 총애를 받는 오달리스크는 귀족의 취향과 맞아 떨어져 화가들이 귀족들의 문란한 생활을 표현하기 좋은 소재였다.

오달리스크란 터키어로, 이슬람 세계에서 권력자 술탄의 궁정 하렘에 있는 여인을 뜻한다. 오달리스크는 술탄의 총애를 받느냐에 따라 신분에 차이가 있었다. 술탄에게 사랑을 받아 아이를 낳은 여인은 자신의 신분과 상관없이 왕비와 같은 호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오달리스크는 자신을 소유할 그를 위해 모든 시간과 정열을 쏟아 부었다. 오달리스크는 매우 복종적인 여인이지만 아름다운 미모로만 승부할 수는 없었다. 그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관능미와 성적 기교였다. 술탄의 성적 취향에 맞추기 위해 오달리스크는 몸매 관리는 물론 성적 기교를 배우기 위해 많은 돈을 썼다.

부셰의 <오달리스크>는 관능미를 한껏 뽐내고 있는 여인이다. 풍만하면서도 아름다운 엉덩이를 강조하기 위해 부셰는 상반신에 옷을 반쯤 그려 넣었으며 또한 오달리스크가 술탄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침대 시트가 흐트러져 있는 것으로 암시하고 있다. 탁자 위에 있는 도자기 물병은 당시 귀족들의 화려한 취향을 보여주고 있다.

로코코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 부셰는 에로틱한 감정을 표현하는데 탁월했다. 부셰는 당시 귀족들이나 신흥 부자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지만 당시 비도덕적인 예술가로 평가되었다.

 

사랑을 기다리는 여인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그랜드 오달리스크>

 

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다. 태어나 매일 같이 사랑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권력자는 싫증을 잘 낸다. 변덕스러운 취향 때문에 한 여자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매일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오달리스크는 술탄의 사랑을 받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의 품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뚫고 천국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성적 기교를 위해 많은 시간을 들인 그녀들이기에 술탄이 옆에 없을 때에는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해 나름대로의 방법을 썼다.

오달리스크는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성충동을 달랬고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870~1867)는 그녀들의 성충동을 달래는 수단을 표현하기 위해 발을 선택했다. 앵그르는 사실적으로 발을 그려 넣었는데 이 작품에서 오달리스크가 들고 있는 공작털로 만든 부채는 성충동을 달래는 도구다. 그림 속 여성의 발은 성적 쾌감의 상징적인 암시다. 성적 자극 수단으로서의 발 간지르기용 부채나 발 마사지는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사용되어왔던 물건이어서 앵그르는 에로틱함을 강조하기 위해 공작털 부채를 그려 넣었다.

앵그르의 가장 대표적인 누드화인 <그랜드 오달리스크>는 1813년 카롤린 뮐러 여왕이 의뢰해서 제작하지만 여왕에게 전해지지 않고 프로이센 왕의 시종장인 폴타레스 고르제 백작이 구입한다. 앵그르는 이국적인 풍경에 매혹되었지만 하렘을 방문한 적이 없다. 하지만 누드화의 대가답게 하렘을 그리고 싶었다. 앵그르의 상상력이 최대한 발휘된 작품이다. 그는 같은 포즈의 오달리스크를 네 작품이나 제작할 정도로 이 작품 제작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화려한 실내에서 술탄을 기다리고 있는 앵그르의 오달리스크의 누드는 전통적인 원근법이나 명암법을 무시하고 여체의 아름답고 부드러운 선만 강조되었다.

비스듬이 누운 여인은 이상하리 만큼 실제의 허리 길이보다 길고 엉덩이도 비정상적으로 큰 편이다. 앵그르가 그린 오달리스크는 절대 권력자에게 보여지는 여성의 이상적인 모습만 강조되었다. 이 작품 속의 여성은 여성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사랑을 받는 존재, 즉 욕망의 배출구이라는 시각으로 본 것이다. 하지만 앵그르는 그것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

앵그르가 <그랜드 오달리스크>를 살롱에 출품하였을 때 아카데미적 누드화만 본 당시 사람들은 비례가 맞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앵그르는 ‘화가가 아름다운 몸매를 그리려면 과장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고전주의 정점을 이루고 있는 앵그르는 시대를 잘 타고난 화가다. 나폴레옹의 눈에 띄여 계관화가로서 순탄하고도 영광된 삶을 살았지만 그는 자신의 재능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는 화가였다.

 

명화속의 삶과 욕망 박희숙 2007

마로니에북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