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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그림・전시

속이고 감추는 관계의 피곤함

by 파장 2012. 7. 3.

타인에게 속지 않으려는 노력

 

조르주 드 라 투르<속임수> 1635 캔버스에 유채 106×146 루브르 박물관

 

17세기 프랑스의 화가 라 투르가 그린 ‘속임수’라는 그림을 보면, 돈내기 카드놀이를 하면서 서로 팽팽히 눈치를 보며 견제하고 있는 사람들이 나온다. 왼쪽에 앉은 남자는 등 뒤 허리춤에서 다른 카드를 슬쩍 꺼내서 자기가 가진 패를 바꿔치기하려고 하고 있다. 가운데 앉은 여자의 전략은 다르다. 이 여자는 시녀를 시켜 슬쩍 포도주를 채워주러 온 것처럼 위장하게 한 후 다른 사람이 무슨 패를 가지고 있는지 귀띔으로 전해 듣는다. 모두들 눈초리들이 범상치 않다.

그런데, 오른쪽에 앉은 남자는 아둔하게도 지금 게임 판에서 무슨 음모가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듯하다. 게다가 특별한 전략도 없는 것 같다. 왠지 모르게 이 남자를 응원하고 싶어진다. 동병상련인가 보다. 하지만, 이 셋 중 누가 최종 승자가 될지는 게임이 끝나봐야 안다. 엉뚱하게 오른쪽 남자가 이기는 수도 있다. 자신의 패를 들키지 않고 잘 지키면 상대방의 속임수는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부터 가면 벗기

 

 제임스 앙소르<가면에 둘러싸인 앙소르> 1899 캔버스에 유채 120×80 개인소장

기에의 상징주의 화가 제임스 앙소르의 그림 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그 날 아이가 보았던 사람들처럼 위협적이다. ‘가면에 둘러싸인 앙소르’라는 작품을 보면 중앙에 있는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면을 쓰고 있다. 어린 시절 앙소르의 어머니는 카니발 가면 같은 것을 파는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앙소르는 가게에서 카니발 가면을 써 보는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가면을 썼다가 벗을 때면 좀 전의 밋밋하던 그 사람은 사라져 버리고 가면의 사람으로 완전히 바뀌어 있는 듯 느껴졌다. 음흉스러운 가면을 써 본 사람은 가면처럼 음흉스럽게 변해 있고, 교활하게 생긴 가면을 쓴 사람은 가면처럼 교활해져 있다. 사람들 마음속에는 온갖 얼굴들이 살고 있다가 어느 순간 두드러져 나온다는 것을 어린 앙소르는 발견했다. 이후 그의 작품에서 가면은 인간의 본성과 관련하여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소재가 되었다.
오스카 와일드가 말하였듯, 가면이 실제 얼굴보다 더 진실한 모습일 수도 있다. 가면은 인간의 내면 깊숙이 감추어진 본성을 밖으로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비굴한 얼굴, 짜증내는 얼굴, 남을 탓하는 얼굴…. 앙소르가 그린 자화상은 비단 중앙에 있는 사람만이 아니다. 자신은 맨얼굴이고 다른 사람들만 가면을 쓴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가면의 얼굴들 모두가 바로 화가의 마음속 얼굴들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언제나 속이는 사람과 속는 사람, 이득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자기 혼자 세상을 약지 못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도 누군가에게는 속임수에 능란하고 약아빠진 가면의 얼굴로 비칠지도 모른다. 또한 약지 못하다고 해서 늘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 주어지는 행운과 불운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에, 마음을 놓다.(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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