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마송<그라디바> 1939 캔버스에 유채 97×130 개인소장
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마송이 그린 ‘그라디바’는 소설 속에 나오는 불가사의한 우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린 그림이다. ‘그라디바’는 빌헬름 옌센(W. Jensen)이라는 대중 소설가가 1903년에 쓴 소설 제목인데, 책의 내용이 특이했다기보다는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트가 잠재적 욕망에 관한 강연회에서 종종 그 소설의 내용을 예시로 든 것 때문에 잘 알려지게 된 책이다.
주인공인 고고학자는 뮌헨 박물관에서 ‘그라디바’ 라는 고대 그리스 부조상의 여인을 보고 넋을 잃는다. 특히 발가락 끝으로 내딛는 우아한 발걸음의 모습에 반해 자리를 뜰 줄 모르고 그것을 바라보았다. 단지 작품 속 여인일 뿐인데, 꿈에서까지 그 모습이 이상하리만큼 생생히 나타나는 것이 기이해서 그는 2000여 년 전 그녀가 살았던 폼페이의 폐허를 방문한다.
헛된 줄 알면서도 그는 그녀의 흔적이라도 찾으려는 듯 화산 폭발로 모두 화석이 되어버린 아무도 없는 옛 도시의 유적 속을 거닐고 있었다. 바로 그 때 멀리서 어느 낯선 소녀가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 소녀는 그라디바의 발걸음과 매우 유사하게 걷고 있었고, 얼굴마저 똑같이 닮아 있었다. 마치 그라디바가 다시 살아나온 것 같았다. 고고학자가 무의식 속에서 기다리고 있던 석상의 여인은 소녀와의 그 우연한 만남을 통해 현실 속의 실제 여인으로 바뀐다. 마송의 그림 우측에는 벽난로가 있는데, 마치 폼페이의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이글이글 끓어오르고 있다. 좌측으로는 지진이라도 일어나는 듯 벽이 ‘쩍’ 하고 갈라져가고 있다. 그림 전체에서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괴력이 감돌고 있는 가운데, 중앙에서는 돌이던 여인이 피와 살점을 지닌 몸으로 변성하고 있다. 꿈의 여인이 진짜 여인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주변을 예민하게 감각하라.
한스 아르프<우연의 법칙으로 배열한 사각형의 콜라주> 1916~17 색종이 콜라주 48.5×34.5 뉴욕 현대미술관
우연한 만남은 수 겹으로 쌓여온 마음속 염원이 외부세계로 전해졌다가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일으킨 파동이 점점 커지면 어마어마한 회오리를 일으킬 수 있듯, 아주 미미한 인간의 염력도 겹겹이 쌓이게 되면 우주에까지 미칠 수 있는 것이다.
다다(Dada) 예술가인 한스 아르프는 모든 것을 제거한 무(無)의 상태에서 오직 우연의 가능성만을 남겨둔 채 작업을 시도하였다. ‘우연의 법칙으로 배열된 사각형들의 콜라주’가 그 한 예다. 이 작품은 아르프가 커다란 양면 색종이를 손으로 죽죽 찢은 뒤 바닥에 떨어뜨려 배열된 모습 그대로를 풀로 붙여 만든 작품이다. 누군가가 종이를 찢어 바닥에 버렸다면 이는 아무 의미 없는 행위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건에 예술적 창조 혹은 예술적 반항이라는 의미를 덧씌울 줄 아는 예술가였기에 우연의 행위는 예술작품으로 남겨질 수 있었던 것이다.
우연이란 일상에서 늘 스치고 지나가버리는 아주 가벼운 사건들에 불과하지만 우연을 인연으로 해석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이다. 한 때 유행처럼 읽혔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저자인 밀란 쿤데라는 주인공들의 생각을 통해 우연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그 어느 누구와도 결코 깊고 오랜 관계를 맺고 싶지 않은 남자가 있다.
하지만 이 남자에게는 왠지 모르게 떨쳐버릴 수 없게 된, 마음속에 커다란 한 자리를 차지하는 여자가 생겼다. 그런데 그녀와의 인연이란 고작 몇 번의 ‘시시한’ 우연들이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다. 가령 그 여자가 일하는 술집에 그가 들어선 순간 여자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우연, 그리고 남자가 6호실에 머물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여자는 자신이 예전에 살던 건물의 번지수가 6인 것을 기억해 낸 우연, 또 여자가 늘 즐겨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곤 하던 바로 그 벤치에 그가 앉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던 우연 등이었다.
남자에겐 지극히 사소한 사건들이 여자에게는 개인적으로 아주 특별한 의미로 해석되었던 것이다. 우연은 주변에서 심심할 새도 없이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둔하게도 그것이 지나가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뿐이다. 소설에서는 자주 있는 우연의 일치가 실제 생활에서는 좀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연의 의미를 자기에게 맞게 해독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일상을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는 우리의 더듬이를 날카롭게 손을 보는 게 먼저일 것이다. 그러면 놓혀버린 수많은 우연들은 소설처럼 그림처럼 아름다운 구성을 만들어낼 지도 모를 일이다.
그림에, 마음을 놓다 (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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