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두려운 사람
귀스타브 모로<오르페우스> 1866 캔버스에 유채 154×99.5 오르세 미술관
혼자 있는 것과 외로운 것은 같지 않다. 외로움은 상실감의 의미를 내포한다. 아주 친밀한 관계 속에 있다가 만남이 소원해졌을 때, 또는 사랑하던 연인에게서 이별을 통보받았을 때 외로움이 기습해온다. 그 느낌은 혼자 있는 사람이 느끼는 인간본연의 고독과는 정도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혼자 있을 땐 자신과 풍부한 대화를 하지만, 외로울 땐 자신을 전혀 돌보지 못하게 된다.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해 스스로 질책하면서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오지 않을 상대방의 연락을 기다리며 헛된 기대로 시간을 소모시킨다. 그러고 나서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화가 나서 또 한 번 감정을 소모시킨다.
프랑스의 상징주의자 모로가 그린 ‘오르페우스’를 보면, 아름다운 여자가 죽은 남자의 머리를 악기에 담아 들고 슬프게 바라보고 있다. 이 그림은 그리스 신화에서 소재를 따온 것으로, 죽은 머리는 오르페우스이고, 여자는 그를 흠모하던 사람이다. 오르페우스는 리라를 타면서 황홀한 음악으로 여인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여인은 그 음악에 취했고, 그가 자신을 향해 연주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여인은 오르페우스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그로부터 차가운 비웃음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오르페우스에게 농락당했다고 느낀 여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 여자들은 분노하여 오르페우스를 잔인하게 죽이고 떠나버렸다. 그림 속의 이 여인만은 오르페우스를 잊지 못하고 그의 시신을 강에서 건져냈다. 남자의 두 눈은 더 이상 여인을 바라보지 않으며,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여인을 위해 노래하지 않는다. 둘의 관계는 남자의 잘린 목이 말해주듯 영영 단절되었다. 그럼에도 이 여인은 이 남자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별이 무척이나 힘들었던 사람이 필자의 주변에도 있었다. 덴버에서 알게 된 ‘유키’라는 일본 여학생이었다. 유키는 미국에 오기 직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상태였다. 두 사람은 대학 내내 꼭 붙어 다녔고, 유학도 함께 오려고 계획했었다. 유키의 입학허가서가 오지 않아서 남자가 먼저 유학을 떠났는데, 몇 개월 후부터 남자에게서 서서히 연락이 줄어들더니 어느 날부터는 완전히 연락이 끊겨버렸다고 했다. 나중에 미국에 온 그녀는 가까스로 그 남자를 만났지만, 재회의 기쁨은커녕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싸늘한 이별의 말만 듣게 되었다.
그렇게 유학생활을 시작한 유키는 혼자 무엇을 해낼 자신도 없고 의지도 없었다. 그 애는 잡색의 머리칼을 가진 미국남자를 만나고 있었는데, 사귄다기보다는 여자 측에서 온 마음을 바쳐 남자를 섬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미국남자가 다른 주로 떠나버리자 유키는 곧바로 라틴계로 보이는 새로운 남자를 따라다녔다. 외로움이 두려웠던 유키는 전 애인이 있던 공백을 사랑하지도 않는 다른 남자들로 채우려했던 것 같다. 물론 이 사랑에서 저 사랑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관계들 속에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유키의 경우는 달랐다. 그 애는 애인 자체보다도 외로움의 감정이 견디기 어려웠던 것이다. 애인은 외로움을 잊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내안의 달빛 발견하기
레메디오스 바로<환생> 1960 메소나이트에 유채 81×47 개인소장
남의 연애에 대해 신경 쓰기에는 해야 할 공부가 너무나 많았던 탓에 필자는 유키에 대해 까맣게 잊은 채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 해 크리스마스 때 불쑥 유키로부터 카드가 날아왔다. 하와이에 있는 호텔에서 인턴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자기는 도시락을 싸와서 점심 때 늘 혼자 먹는다고 적혀 있었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필자가 혼자 먹던 모습이 떠오르더란다. 혼자 있어 보면서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고, 자신에 대해 훨씬 가까워질 수 있었다고 했다. 기뻤다. 유키는 드디어 이별을 받아들이고, 외로움을 극복해낸 것이었다.
유키가 보낸 카드의 내용과 초현실주의자 바로가 그린 ‘환생’이 머릿속에서 교차된다. 그림 속 여인은 자신의 그릇 속에 환한 달이 담겨 있는 것을 보고 경탄하고 있다. ‘하늘에 뜬 달처럼 이렇게 아름다운 달빛이 내 안에도 있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외로움으로 혼탁하고 불안정했던 마음에서 벗어나니, 잔잔한 마음의 수면 위로 하늘의 달빛을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유키도 그것을 경험한 듯했다.
이별 후에는 외로움의 시기를 거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시기를 앓고 나면 혼자가 되는 즐거움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무엇을 상실해버린 반쪽이 아닌 온전한 하나가 되어야만 다른 하나를 만나 또다시 반쪽을 나누어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림에, 마음을 놓다 (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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