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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그림・전시

백마디 말보다 따뜻한 타인의 감촉

by 파장 2012. 7. 3.

단절된 교류의 기억

 

쉬잔 발라동<버려진 인형> 1921 캔버스에 유채 129×81 위싱턴 네셔널 여성미술관

어머니와 대화가 통하지 않게 된 모녀를 그린 그림이 쉬잔 발라동<버려진 인형>이다. 발라동은 툴루즈-로트렉, 르누아르 등 당시 파리에서 이름을 떨치던 화가들의 누드모델로 생활하면서 곁눈으로 그림을 배운 화가다. 그녀는 캔버스 앞에서 스스로 이런저런 포즈를 취해보던 풍부한 경험 덕분에 동작을 통해 인물의 미묘한 심리를 그려내는데 능하게 되었다. ‘버려진 인형’ 속에서 어머니와 딸은 언뜻 친밀한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가 못하다.

어머니는 목욕한 딸에게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주고 있다. 딸은 그런 어머니의 손길이 부담스러운지 한 손으로 슬쩍 엄마의 손길을 거부하듯 막으며 등을 돌린다. 발밑으로는 인형이 버려져 있는데, 그 인형의 머리 위엔 딸이 머리에 한 것과 똑같은 리본이 매어져 있다. 어머니에게 딸은 아직도 그저 이 인형처럼 자그마하고 어린 존재다. 하지만 소녀는 더 이상 인형을 가지고 놀 나이가 아니다. 소녀에게는 언젠가부터 자기만의 세계가 생겼다. 그녀가 왼 손에 들고 있는 손거울이 그것을 말해준다. 소녀는 거울을 통해 성숙해진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있다. 거울 안의 세계는 타인의 눈으로는 바라볼 수 없는 그녀만의 세계인 것이다.

 

친밀한 초감의 추억

 

메리 카사트<목욕> 1891 캔버스에 유채 100.3×66 시카고 아트인스트튜트

 

인상주의자 메리 카사트<목욕> 작품 속에는, 엄마와 아이는 서로 뗄 수 없이 엮어진 관계임을 보여주듯 몸이 교차하는 구성으로 앉아 있다. 또한 두 사람은 엄마의 손과 아이의 발이 맞닿은 곳에 시선을 맞추고 있다. 보는 곳이 같다는 것은 서로 마음이 하나로 통하고 있다는 증거다. 아이와 어머니가 서로에게서 느끼는 포근한 유대감을 카사트만큼 잘 표현한 화가를 본 적이 없다. 아이의 보드라운 살갗의 감촉과 향긋하고 그리운 엄마 냄새가 그림에서 물씬 배어나온다. 그림 속의 아이는 화가의 딸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하지만 실제로 카사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아이를 낳아본 적도 없는 화가다. 조카를 돌보기는 했지만 모성애를 가졌다기보다는 냄새나지 않고 깔끔하며 예쁜 아이만 좋아했다고 한다. 어쩌면 화가는 엄마 품에 안겨 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엄마와 아이를 그렸는지도 모른다.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느낌들을 되살려냈다. 엄마가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려주면 솔솔 졸음이 오던 나른한 그 느낌, 엄마가 머리를 감겨줄 때 간지럽게 머리위로 물이 스며들던 그 느낌, 엄마가 배를 문질러줄 때의 커다랗고 따스했던 손의 느낌…. 세상에 태어나는 첫 순간부터 어머니와 나누었던 교감은 언어가 아니라 바로 이런 느낌들로 이루어진 것임을 기억해냈다.

 

그림에, 마음을 놓다. (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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