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나보다 잘났다고 느낄때
에드바드르 뭉크<질투> 1907 캔버스에 유채 89×82.5 오슬로 뭉크 미술관
노르웨이 출신의 상징주의 화가, 뭉크가 그린 ‘질투’를 보면 한없이 무력해 보이는 남자가 그림의 전면에 등장한다. 그 뒤쪽으로는 이 남자를 질투심으로 몰고 간 원인으로 생각되는 포옹하는 두 남녀의 모습이 보인다. 이 방은 뭉크의 마음속이고, 두 남녀는 마음속에서 일어난 상상을 그린 것이다. 질투라는 것이 대부분 그렇듯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상상의 감정이다. 상대방에 대해 의심하고 불안한 상상을 키워가는 것이 바로 질투다. 그리고 그 상상은 사랑함에 있어서 또 사랑받음에 있어서 자신감을 결여한 자가 품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뭉크의 경우는 과거에 사랑했던 감정이 완전히 정리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심리적으로 극도로 불안정한 가운데 한 여인을 새로 만나게 되었다. 뭉크는 그 여인을 정신적으로나 성적으로 만족시켜줄 자신이 없었다. 사랑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 그래서 겉으로는 서로 구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관계를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 여자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을지 모른다는 상상으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랑이 있어야 할 자리에 질투가 대신 차지하고 들어와 마음을 온통 지배하게 된 것이었다.
머리속으로 날리는 강펀치
조지 벨로<뎀지와 퍼포> 1924 캔버스에 유채 129.5×160.7 뉴욕 휘트니 미술관
이럴 때 도움이 되는 통쾌한 그림이 있다. 뜬금없기는 하지만, 어느 권투선수가 펀치 한 방을 크게 날려 링 밖으로 상대 선수를 내몰아버리는 장면이다. 이 그림은 미국의 화가 조지 벨로우가 그린 것이고, 제목인 ‘뎀지와 퍼포’는 두 선수의 실제 이름이다. 단순히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꺼져 버려!’ 라고 말하듯 몰아낸 것이다. 그림에서 흥분한 관중들의 동요가 들려오는 것 같다. 사실 1900년대 초반에 권투에 열광하던 미국인들 중에는 죽도록 일하고도 별로 풍족하게 살지 못하는 블루칼라가 많았다. 이들은 고된 노동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임금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불법적으로 벌어지는 내기권투에서 해소하곤 했다. 그런 이유로 내기권투에 온 관중은 “날려버려, 죽여 버려!” 하고 외쳐댔다.
만일 스스로를 못난 사람으로 만드는 불청객들이 마음속에 버티고 있다면, 정말로 강펀치로 날려버려야 한다. ‘내 마음속에서 썩 꺼져 버려!’라고 말하면서. 남에 대한 시기와 질투가 바로 날려버려야 할 불청객들이다. 그 두 감정은 자신감과 만족감을 잠식시키면서 그 자리에 열등감과 패배감을 자라게 만든다. 행복이란 자기충족의 마음상태에서 생겨나는 것인데, 그것들로 인하여 충족상태는 점점 결핍상태로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강펀치를 날릴 순간이다. 적어도 내 마음속에서만큼은 나는 영원한 챔피언이다.
그림에, 마음을 놓다 (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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