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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그림・전시

정사의 두얼굴

by 파장 2012. 7. 2.

존재를 확인하는 정사 앙리 게르벡스의 <롤라>

 

앙리 게르벡스<룰라> 1878 캔버스에유채 175×230 보르도 미술관


다 보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주저앉아 버리고 싶은 순간이 많이 있다. 그 무거움에 자신을 놓아버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특별한 이유와 설명도 없이 연인과 아니면 하룻밤의 상대에게 마지막으로 자신을 잊고 싶으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자 한다. 생의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섹스이기 때문이다.

앙리 게르벡스(1852~1929)의 <롤라>라는 작품은 알프레드 뮈세의 동명 소설의 내용을 표현한 작품이다. 도시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롤라는 재산을 탕진하고 마리라는 소녀와의 사랑도 실패한다. 롤라의 인생에서 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파리에서 가장 타락한 남자라고 불릴 정도로 명예는 땅으로 추락했고 낭비로 인해 파산 그리고 연인에게 사랑받지도 못한 롤라가 택한 것은 자살이었다. 롤라는 마지막으로 창녀 마리온을 부른다. 마리온은 가난 때문에 창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여자다. 두 사람은 사회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존재로 같은 처지였지만 고독과 외로움의 깊이가 달랐던 두 사람의 운명은 다르다. 롤라가 선택한 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확인 작업으로서의 섹스였고 마리온은 섹스가 직업일 뿐이었다.

게르벡스는 매우 통속적인 주제인 이 작품을 원작과 약간 다르게 표현했다. 호텔 창가에 기대어 서있는 롤라는 벌거벗은 채 침대에서 자고 있는 마리온을 우울한 표정으로 돌아보고 있다. 침대 가에는 옷들이 널려 있는 데 그것은 방금 정사가 끝난 것을 알려 주고 있다.

원작에서 마리온은 어린 소녀인데 이 작품 속의 여인은 앳된 소녀의 모습은 전혀 없는 농염한 여인이다. 왼쪽 다리는 침대에 오른쪽 다리는 침대 아래에 포즈를 취하고 있는 벌거벗은 여인의 몸을 화면 정면에 배치함으로서 게르벡스가 관찰자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인의 중요 부분을 침대 시트로 가린 것은 게르벡스가 에로티즘을 은밀히 드러내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게르벡스는 화면을 두 부분으로 나누었는데 화면 정면에 흩어져 있는 옷들은 격렬한 정사를, 화면 뒤에 남자를 배치한 것은 소설 내용에 충실하기 위해 남자의 심리를 표현한 것이다.

앙리 게르벡스는 이 작품을 1878년에 공개했으나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그는 이 작품을 살롱전에 출품했으나 부도덕하다는 이유로 전시가 거절된다. 그림의 분위기가 당시 파리의 부르주아의 생활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정사의 거짓말 |루벤스의<삼손과 델릴라>

 

페테르 파울 루벤스<삼손과 델릴라> 1609 목판에 유채 185×205 런던 내셔널 갤러리

 

랑의 경험이 많은 여자일수록 거짓말을 잘한다. 경험 많은 여인에게 사랑은 기대했던 것만큼 특별한 감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섹스를 무기로 영혼을 감염시킬 거짓말을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다. 사랑에 많이 울어보았던 여인은 사랑을 결코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황금에 눈이 어두울 수밖에 없다. 성서에 나오는 삼손은 괴력의 남자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 만큼 강한 힘의 소유자인 삼손은 용맹스런 남자의 대명사처럼 불리고 있다. 초인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삼손은 신의 남자였다.

신의 뜻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 운명을 지닌 그에게 지켜야 할 금기가 있었다. 술과 힘을 솟아나게 하는 머리카락을 절대로 잘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초인적인 남자의 약점이 단순하게도 사랑에 약하다는 것이다. 세상을 평정하는 일에 너무 바빠 힘 쓸 시간도 부족한 그들은 사랑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삼손은 아름답지만 사랑의 테크닉이 뛰어난 팔레스티나의 여인 들릴라를 사랑하게 된다.

경험 많은 그녀는 은 천냥에 매수되어 삼손의 비밀을 알아내고 삼손은 그녀의 배신에 두 눈을 잃고 머리카락을 잘려 힘을 쓰지 못한다루벤스(1577~1640)의 <삼손과 들릴라>는 성서의 내용을 표현했는데 화면의 배경은 들릴라의 침실로 설정해 성욕에 노예가 된 삼손의 비극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삼손은 들릴라와의 사랑이 끝난 후 그녀의 배 위에서 잠들어 있다. 가슴을 드러낸 채 들릴라는 삼손에 대한 연민의 몸짓으로 그의 어깨를 어루만지고 있다.잠든 삼손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는 남자의 옆에 서 있는 노파는 그 장면을 놓칠세라 촛불을 밝히며 가까이에서 들어다보고 있다. 노파는 사창가의 포주로서 악을 상징하고 있다.루벤스는 사랑과 배신이라는 주제를 빛과 어둠을 이용해 이 작품을 표현했는데 28세 때 이 작품을 그려 당대 최고의 명성을 누리는 화가가 된다.

 

명화속의 삶과 욕망 박희숙 2007

마로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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