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시작, 고백
프랭크 딕시<고백> 1896 캔버스에 유채 114.2×159.9 개인소장
영국의 화가 프랭크 딕시는 사람들 사이에 고여 있는 감정의 세계를 섬세하게 표현해낸 화가이다. <고백>의 작품속에 두 사람은 남자의 얼굴이 컴컴하게 처리되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탓에 언뜻 아버지와 딸처럼 보이기도 하고, 달리 보면 남편과 아내 같기도 하다. 여기서 누가 누구에게 어떤 내용의 고백을 하는지는 우리의 상상에 맡기고 있다. 해석의 단서라면 그림 전체에 흑색과 백색, 그리고 움츠러든 남자의 자세다. 다가가려는 여자의 자세가 두드러진 대비를 이루고 있다는 것뿐이다.
흰 홋을 입은 여자가 창백해 보이기까지 해서 우리는 은연중에 이 여자가 병약한 것은 아닐까 상상한다. 남자는 어두운 쪽에 있다. 아마도 그는 마음이 어둡고 무거운 상태일 것만 같다. 여자 쪽에서 " 저 아프대요, 얼마 살지 못한대요" 하고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하고 그것을 들은 남자는 지금껏 여자에게 소흘했던 자신을 자책하면서 괴로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반대로 남자가 고백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괴로운 듯 손을 머리에 얹고 자세를 웅크린 남자는 지금 꺼내기 어려운 자신의 이야기를 힘겹게 털어놓는다. 반면 몸을 남자쪽으로 기울여 남자의 이야기에 귀를 가울이고 있는 여인은 다소 당황한 듯 보이지만 상대방을 용서할 마음의 준비가 된 듯하다. 마치 도움의 손길을 내밀려는 듯 모은 두 손이 그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두손으로 곧 남자의 떨리는 손을 꼭 잡아줄 것 같다.
고백의 내용이 어떤 것이든 그림 속 이 두사람 사이에 지금 오래도록 놓여있었던 냉냉한 얼음 장벽이 녹아내리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자기 마음속의 슬픈 응어리를 지우는 것, 그리고 상대방이 완벽하지 않은 인간임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용서이기 때문이다.
이해의 끝, 용서
렘브란트<돌아온 탕아> 1665 캔버스에 유채 260×202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바로크의 거장 렘브란트<돌아온 탕아>의 작품은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아버지의 규율에 따르지 않고 집을 나가 방탕하게 살다가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는 꾸짖고 내쫓는 대신 더할 수 없이 푸근한 얼굴로 맞아주고 모두 괜찮다며 등을 두드려주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기를 한결같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언제든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부모와의 관계에서 우리가 아는 것은 오직 은혜와 효도라는 말밖에 없다. 부모이기에 희생하고 자식이기에 복종하면서 서서히 꿈이 말라가고 조금씩 섭섭한 감정을 쌓아가는 것도 은혜이고 효도일까? 가슴에 고인 물은 오래두면 썩는다. 부모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도리를 행하기보다는 서로 많이 사랑해주면 좋겠다.
그림에, 마음을 놓다. (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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