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지 않는 열정, 축복일까 형벌일까
오스카 코코슈카<바람의 신부> 1914 캔버스에 유채 178×215 바젤 미술관
중세 말기에 쓰인 단테의『신곡』에는 평생 떨어지지 않고 늘 붙어서 열정 속에 사는 여인이 등장한다. 파울로아 프란체스카다. 오스카 코코슈카<바람의 신부>의 작품속에 이 여인의 모습에 자신의 감정이 가득 실어 그렸다.
지옥을 답사 중이던 단테는 거센 바람 속에 떠다니고 있는 두 사람을 만나 묻는다. "도대체사랑이 무슨 죄가 되었기에 두 분은 이곳에 오셨습니까?" 그러자 아름다운 프란체스카가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 한다.
지독한 추남에 성격마저 포악했던 파울러의 형 장치오토는 프란체스카와의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잘생기고 부드러운 성격의 동생 파울로를 대신 내세웠다. 파울로를 형인 줄 알고 사랑하게된 프란체스카는 결혼식을 올린 후 에서야 남편이 아님을 알고 무척 상심했다. 파울로 역시 처음에는 형을 위해 한 일이었지만 프란체스카를 만난 이후부터는 연모의 정을 마음속에서 지워버릴 수가 없없다. 시선을 피하며 살던 두 사람은 어느 날 함께 책을 읽다가 말할 수 없이 부드러운 서로의 숨결을 느꼈고, 끓어오르는 열정을 억누를길 없어 정신없이 서로의 육체를 탐하고 말았다. 때마침 그 광경을 목격하게된 장치오토는 분노에 그 둘을 한칼에 베어버린다.
불륜의 대가로 목숨을 잃기는 했지만, 둘의 영혼은 이제 더 이상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설령 그곳이 지옥이라 한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파울로는 프란체스카를 신부로 맞이했고, 둘은 처음으로 행복감에 젖어보았다. 게다가 지옥의 심판관은 두 영혼에게 영원토록 열정적인 사랑 속에서 살도록 처방을 내려주기까지 했다.
과연 그 처방이 축복이었을까? 코코슈카는 청회색의 음울한 그림을 통해 영원한 열정이란 오히려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대답라는 듯하다. 회오리바람 속에 몸을 내맡긴 두 여인은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고 몹시 힘겨워 보인다.
잔잔한 사랑이 선사하는 풍요로움
베첼리오 티치아노<천상의 사랑과 세속의 사랑>1515 캔버스에유채 118×275 보르게세 미술관
사람들은 열정이 오래도록 자신에게 떠나지 않기를 갈망하지만, 그 갈망은 거의 예외 없이 시간의 파괴력 앞에 무너지고 만다.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거장 베첼리오 티치아노<천상의 사랑과 세속의 사랑>의 작품은 열정적인 사랑을 지속하는 삶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들려준다.
그림 왼쪽에 옷을 차려입고 앉은 여인은 결혼을 앞둔 여인으로, 티치아노에게 그림을 의뢰한 어느 귀족의 신부가 될 사람이다. 티치아노는 신부의 단독 초상화를 의뢰받았지만, 또 한 사람의 여인을 그림 속에 그려 넣었다. 오른쪽 편에 있는 누두의 여인으로, 중앙에 있는 아기 큐피트의 존재로 짐작컨대 그녀는 아마도 사랑의 여신 비너스일 것이다. 여신은 지금 우울가에 걸터앉아 사랑의 미덕이라는 주제로 물을 뜨러 온 신부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참 이다. 가르침의 내용은 우물 바깥 면에 돌로 새겨진 부조 속에 있다. 바로 고삐 풀린 말과 폭력을 행하는 사람들의 이미지이다.
열정을 품는다는 것은 말이 전력 질주하는 것과 같아서 숨도 가쁘고 에너지 소모량도 많다. 그렇기 때문에 고삐를 채우지 않는 채 변덕스럽게 질주하는 말과 같이 사랑을 하면, 쓸 수 있는 내적 에너지가 한꺼번에 모두 소모된다. 그런 사랑은 서로를 상처 입히고 쇠진시키는 폭력적인 사랑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폭풍 후에는 잔잔한 하늘이 열리듯, 열정적인 사랑 후에는 잔잔한 사랑의 단계로 넘어간다. 여러 국면의 사랑들을 한단계씩 차례로 경험하면서 자신과 상대방을 새롭게 재발견하는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꼭 열정이 아니어도 영혼은 풍요로울 수 있다.
그림에, 마음을 놓다 (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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