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잣대로 재단한 욕망
장 시메옹 새르댕<뷔페> 1728 캔버스에 유채 194×129 루브르 박물관
장 시메옹 새르댕<뷔페>의 작품에서 먹을 것들을 앞에 두고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는 개가 있다. 그런 개에게 지금 커다란 유혹이 펼쳐져 있다. 특히 탐스러운 석화는 테이블 가장자리에 놓여 있어 앞발만 살짝 들어도 닿을 수가 있다. 개는 지금 갈등하며 망설이고 있다. '주인님이 먹지 말라고 했는데, 그래도 조금만 먹으면 안될까.' 그림을 잘 들여다보면, 석화 껍질로부터 굴을 테어내 먹기 위한 칼이 접시 밑에 놓여 있다. 이것은 개에게는 강력한 금지의 의미이다.
칼뿐 아니라 음식과 잔이 테이블 위에 불안정하게 배치되어 있다. 왼쪽 가장자리에 보이는 유리잔은 제대로 놓여 있지 않아서 곧 떨어져 깨어질 것 같고, 과일들은 장식을 위해 층층이 쌓여 있는데 잘못 건들면 곧 우르르 쏟아져버릴 것만 같다. 만일 개가 음식을 입으로 물어가기 위해 테이블에 앞발을 올려놓는다면, 바로 그 순간 바닥으로 떨어지고 유리잔은 깨어지고 과일들은 굴러 떨어질 것이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화가 샤르댕은 우화처럼 교훈이 숨어 있는 그림을 주로 그렸다. 정물들이 가지고 있는 숨은 상징성까지 심층적으로 해석하면, 그림의 내용은 단순히 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인간엑 널리 전하는 훈계가 된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음식과 물건은 서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성적 욕망과 관련된 상징물로 여겨져 왔다.
이를테면 싱그러운 과일은 젊고 탐스러운 육체를 암시하며, 유리로된 병과 잔은 육체의 순결을 말해준다. 그런가 하면 음식 중에서 조개류, 특히 껍질이 벌어져 있는 싱싱한 석화는 노골적인 유혹의 모습과 관련이 있다. 개는 여기서 성적인 쾌락을 탐하고 있는 어리석은 인간을 대표하고 있다. 영원하지 못한 본능을 추구 하고 있기 때문에 어리서다고 보는 것이다.
부끄럼 없이 본능에 충실하기
에드윈 렌드시어<늙은 양치기의 상주> 1837 목판에 유채 45.8×61 런던 빅토리아앤드앨버트 박물관
동물을 주로 그렸던 영국의 화가 에드윈 렌드시어<늙은 양치기의 상주>의 작품속에 주인이 죽은 후에도 여전히 주인 곁을 떠날 줄 모르고 관 위에 머리를 올려놓은 채 그리워하는 개가 등장 한다. 인간에 대한 개의 사랑이 느껴져서 가슴이 찡해지는 그림이다. 인간과 개사이에는 아주 오래된 억 겹의 인연이 얽혀 있는 것 같다. 인간의 아득히 먼 조상인 원시인이 동굴 생활을 하며 주변 맹수들의 위협으로부터 가까스로 스스로를 보호하며 살고 있을 무렵, 늑대 못지않게 무섭게 생긴 네 발 달린 짐승 하나가 인간에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 온다고 상상해보라.
개는 인간의 편이 되어서 다른 네 발 달린 짐승들을 물리쳐주고, 토끼와 꿩도 대신 잡아다가 인간 앞에 물어다 놓았다. 네 발 달린 짐승들 사이에서 개는 인간 편에 선 괴상한 변절자에 이단아였겠지만, 인간에게 개는 한없이 고마운 존재였을 것이다. 인간은 개들이 물어다 준 사냥감을 요리해서 개와 함께 누누어 먹었고, 이렇게 해서 인간과 개와의 오랜 동반 관계가 성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수 많은 복잡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은 개와 함께 살기 위해 많은 규칙을 만들고 개를 훈련시켜야 했다. 식탁 위의 음식은 먹지 말 것, 야생 습성을 버릴 것, 아무도 물지 말 것, 아무 곳에서 변을 보지 말 것 등등. 하지만 개는 인간을 단순한 방식으로 좋아한다. 개는 하루에도 수십 번 인간에게 반갑다는 인사를 하고 행복하다는 표현을 한다. 꼬리 흔드는 것만으로 부족한지 온 몸을 흔들면서 뛰어다니고, 너무 좋아서 벌러덩 드러눕기도 한다.
그런 개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실컷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인간이 개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못난 것도 없는 내가 왜 매달려야 할까, 내 모든 것으 바쳐 사랑할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 내가 왜 매달려야 할까' 내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할 가치가 있는 사람일까, 내가 이렇게 좋아했는데, 나를 떠나면 어울해서 어쩌나, 나 혼자 상처 받으면 어쩌지.' 이런 의심 때문에 사람들은 정작 사랑을 않고 후회만 할 뿐이다. 그 때 더 사랑할 걸 하고.
개는 후회하지 않는다.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소통할 줄 아는 현명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은 준 것 만큼 되돌려 받지 않더라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인간이 미처 깨닫지 못한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동물이기도 하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랑만큼은 개처럼 해야 한다. 사랑하라. 개처럼 솔직하고 단순하게.
그림에, 마음을 놓다. (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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