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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그림・전시

타인의 사랑만이 구원일까

by 파장 2012. 7. 3.

사랑이 나의 고통을 해결해줄까

 

귀스타브 쿠르베<아름다운 아일랜드 소녀> 1865~66 캔버스에 유채 54×65 스톡홀름 국립미술관

간은 오직 타인의 사랑 안에서만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일까? 귀스타브 쿠르베<아름다운 아일랜드 소녀>의 작품 속에 소녀는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그러나 스스로와 대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며 연인의 손길을 떠올리고 있으며, 거울을 통해 연인이 바라볼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다. 거울에는 타인의 시선이 숨겨져 있고, 긴 머리카락에는 타인의 손길이 묻어 있다. 사랑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랑이라는 필터를 끼고 사랑이라는 뷰파인더로 세상을 본다. 그리고 사랑 안에서만 존재하려 한다. 하지만 사랑이 인간을 슬픔의 구렁텅이에서 근본적으로 회복시켜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슬픔은 인간 이전부터 이미 존재해온 것이며, 사랑보다 훨씬 오래되고 끈질긴 어떤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슬픔을 잠시 잊게 해주는 진통제에 불과 할지도 모른다. 슬픔을 직접 대면할 수는 없을까?

 

고통과 직접 대면하라

 

프리다 칼로<짧은 머리의 자화상> 1940 캔버스에 유채 40×27 뉴욕 현대미술관

 

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Fride Kahlo)가 대답을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쿠르베가 그린 여인의 긴 머리카락과는 대조적으로 칼로는<짧은 머리의 자화상>을 그렸다. 마치 광기어린 가학적 행위를 당한 듯 머리카락은 바닥에 산산이 흩어져 아직까지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린다. 멜로 드라마에서 긴 머리를 자르는 장면이 관계의 절단을 암묵적으로 말해주듯, 그림에서도 어렇게 잘려나간 짧은 머리카락은 결별 또는 독립을 말한다.

그림 위쪽으로는 당시 멕시코에서 유행한 가요의 가사 일부가 쓰여 있다. "보세요. 내가 당신을 사랑했다면, 그건 당신의 머리칼 때문이죠. 지금 당신은 대머리가 되었어요.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그림 아래쪽에 펼쳐진 심각한 장면과 이 농담 같은 가사는 어울리지 않는 듯 차라리 섬뜩한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프리다 칼로의 삶에는 여려덟 살 때부터 이미 고통의 그늘이 드리워졌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칼로가 타고 있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게 된다. 그날 살고는 단순히 그녀의 척추를 부러뜨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쇠로 된 긴 봉이 떨어져 나가면서 그녀의 몸을 수직으로 관통하고 말았던 것이다. 평생 석고 지지대를 입고 장애인으로 살면서 칼로는 자신의 고통을 토해내듯 그렸다.

그러던 중 강시 멕시코에서 최고로 명성을 얻은 화가인 리베라(Diego Rivera)를 만나게 된다. 그는 칼로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예술가로서 인정해 주었다.며칠 밤을 새워 벽화 작업을 하는 지칠 줄 모르는 리베라를 보면서 칼로는 건강한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상상했고, 마치 자신의 분신처럼 리베라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리베라에게 점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께닫고 독립을 결심한다. <짧은 머리의 초상화>은 바로 그 결심 후에 그린 것이다. 사랑에 의존하여 자신의 고통스런 현실을 잊고 지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던 있었던 것이다. 칼로는 의존적으로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슬픔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그 슬픔을 감싸 안고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슬픔은 예술이 될 수도 있고 사랑이 될 수도 있고 분노나 좌절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언제나 다른 것으로 모습을 바꾸면서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그리고 당사자도 모르는 사이에 머리카락처럼 조금씩 자라난다. 잘라내도 또 자라난다.

 

그림에, 마음을 놓다 (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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