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피로 배신한 여자, 메데이아
프레더릭 샌디스<메데이아> 1866 목판에 유채 62.2×46.3 버밍엄 시립미술관
복수의 진수를 보여준 여자가 그리스 신하에 등장한다. 그 주인공은 바로 메데이아다. 프레더릭 샌더스<메데이아>의 작품 속에는 복수를 계획하고 있는메데이아를 볼 수 있다. 그녀는 지금 저주의 독약을 제조하면 스스로도 목이 조이고 타는지 목걸이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표정에는 분노와 불안과 히스테리가 교차하고 있다.
그리스 왕에게는 황금 양털이 있었다. 이것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테살리아 지방의 왕은 이아손과 부하들을 모아 원정을 보낸다. 물론 그리스의 왕은 최고의 보물을 순순히 내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이아손 부대를 전멸 시킬 생각으로 과제를 부과하였다. 시민들을 괴롭히는 피에 굶주린 괴물 한떼와 거인 부대를 물리치면 황금 양털을 주겠노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이아손이 절대 이길 수 없는 시험이었다.
한편 그리스 왕에게는 아름답고 영리한 딸 메데이가 있었다. 그녀는 약을 지을 줄 알았으며, 마법을 행할 줄도 알았다. 메데이아는 원정을 온 이아손을 본 순간 다리가 후들거리고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이아손은 자신의 키스와 포옹을 간절히 원하는 메데이아에게 결혼을 약속했고, 그녀의 도움을 받아 황금 양털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를 돕기 위해 메데이아는 아버지를 배신하고 동생이 죽는 것까지도 방관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아손은 그녀의 신의를 저버렸다. 그는 다른 여인에게 반해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어주고 두 아들까지 낳고 함께 살던 메데이아를 버린다. 배신감에 미친 듯 날뛰던 메데이아는 결국 복수를 감행한다. 이아손의 여인을 죽이고, 이어 자신의 두 아들마저 죽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이아손을 위한 기쁨이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복수의 화신 메데이아,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분신의 아이들을 죽여야 했던 저주받은 운명이기도 했다. 복수는 어느 누구의 승리가 아니라 모두의 파멸로 종결되는 것이 보통이다. 얻는 것보다는 잃은 것이 훨신 크다.
그래서 세상의 현자들은 자신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일지라도 너그러이 용서하라고 누누이 말씀하시는가 보다. 용서하지 않으면 자기 마음속에 화를 담아두게 되는 것이고, 화를 오래 담아두면 독이 되어 마음에 구멍을 내고 말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디 용서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인가.
완벽한 망각이야말로 최고의 복수
카바라조<유드티와 홀로페르네스> 1598~99 캔버스에 유채 143×194 로마,국립 미술박물관
나는 용서의 의미를 모두 잊어버리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싶다. 완전하게 망각하는 것이 결국 소극적 의미의 용서일 수 있다. 보란 듯이 더 잘 살고, 더 성공하여 멋진 사람이 되어 나타나겠다는 결심도 망각에 비교할 수는 없다. 상대방을 염두에 두고 사는 한 그만큼 힘겹다는 이야기나 마찬가지이다. 지금쯤은 그가 일을 하고 있겠구나, 오후에는 누구를 만나고 있겠지, 목요일엔 한가하겠구나, 이런 생각들을 품으면서 은연중에 상대방의 시계에 맞추어진 채 자신의 생활이 돌아가고 있다면 그 역시 망각이 아니다.
진정한 망각이란 이어진 모든 연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상대방에 대한 습관들, 어이없게 움트는 그리움까지도 잘라낸다. '아직 더 보여줄 것이 있는데, 할 말도 남아 있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미련을 두면 점점 더 억울해지고 좌절에 빠질 뿐이다.
카바라조<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의 작품은 잘못된 인연으로 엮인 두 인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절연의 순간을 생생하게 시각화하고 있다.
서슬 푸른 칼에서 팔의 근육을 타고 전해지는 살을 베는 생생한 느낌, 목을 관통하는 예리한 감각. 이것은 내용상으로는 살인의 장면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자신의 살갗 속에 스며 있는 기억을 억지로 끊어내는 행위라 볼 수 있다. 아직 자신의 몸 안에 원치 않는 욕망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 마지막 한 올마저도 종결시켜버리려는 것이다.
붉은 천 자락을 따라 시선을 밑으로 향하면 칼끝을 따라 봇물이 터지듯 직선으로 힘차게 속아나는 피를 볼 수 있다. 그것은 실수로 살짝 칼에 베었을 때처럼 방울방울 떨어지는 꽃잎 같은 피가 아니라, 자신의 몸 안에서 칫솟는 분노의 핏줄기이다. 피는 몸을 빠져나오는 즉시 식고 마르며, 진하게 빛나던 피의 빨강은 곧 무기력한 갈색으로 후퇴한다. 피은 오직 붉고 따뜻할 때에만 에너지를 발산한다. 죽은 피는 더 이상 분노의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잊어버린 과거는 죽은 피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결국 최후의 복수란, 용서와 마찬 가지로 과거에 대한 완전한 망각이다.
그림에, 마음을 놓다 (이주은)
'문화예술 > 그림・전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을 독점하고 싶은 당신 (0) | 2012.07.03 |
---|---|
오직 두 사람만 존재하는 사랑 (0) | 2012.07.03 |
사랑의 기억의 추억 (0) | 2012.07.03 |
타인의 사랑만이 구원일까 (0) | 2012.07.03 |
나는 정말 너를 사랑한 걸까 (0) | 2012.07.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