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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그림・전시

사랑을 독점하고 싶은 당신

by 파장 2012. 7. 3.

독점욕 강한 여자, 도라 마르

 

파블로 피카소<게르니카> 1937 캔버스에 유채 350×780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르니카>는 스페인의 도시 게르니카가 1937년 4월 독일 나치의 공습에 의해 무자비하게 폭격당하여 시의 70퍼센트가 파괴되었던 참혹한 사건을 그린 것이다.

<게르니카>을 개인적인 내용으로 읽으려면 도라 마르(Dora Maar)라는 여인을 소개해야 한다. <게르니카>가 그려지기 1년 전인 1936년, 스물아홉의 사진기자 도라는 중년의 피카소를 만난다. 도라는 얼굴 윤곽이 강하고 뚜렷했으며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정 머리에 까만 눈동자를 가진 여인이었다. 피카소는 지적이고 세련된 그녀가 첫 눈에 마음에 들었고, 그 이듬해 게르니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오직 도라에게만 자신의 작업 과정을 독점 촬영할 수 있는 특권을 주기로 했다.

하지만 로라를 만날 무렵 피카소는 마리 테레즈 발테르 라는 여자와 이미 몇 년 째 동거중이었다. 마리 테레즈는 그리스 여신상처럼 깎아놓은 듯한 얼굴에 만짝이는 금발, 그리고 청회색의 눈동자를 지닌 완벽한 육체의 소유자였으며, 순진하고 수동적이며 의존적인 여자여서 외모나 성격에 있어 도라와는 상반된 분의기를 풍겼다. 피카소의 그림속에서 마리 테레즈는 늘 꿈을 꾸듯 행복하게 잠들어 있거나 사랑스럽게 자신의 육체를 보여주고 있는 여인으로 등장하고, 피카소는 투우장 황소처럼 거친 호흡을 몰아 내쉬면서 그녀의 부드러운 몸에 다려들어 욕정을 퍼붓는 황소의 모습으로 나온다.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의 세계를 표현하던 피카소는 <게르니카>의 작업을 위해서는 마리 테레즈와는 다른 종류의 뮤즈를 필요로 한 듯 했다. 새로 만난 도라처럼 자기의식과 표현력이 강한 여성에게서 우러나오는 저돌적이고 반항적인 에너지 같은 것 말이다. 마리 테레즈가 피카소의 딸을 낳은지 몇 달도 채 지나지 않아, 피카소는 도라와 살기 위해 마리를 떠나면서 '넌 무식해서 아무런 반응이 없어' 라는 이유를 댔다.

공식적으로는 스페인의 내전에 관한 작품이지만, 사적으로는 피카소가 일으킨 도라와 마리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별 중에도 마리는 갓난아이를 안고 피카소를 만나러 왔고, 도라는 프카소가<게르니카>를 그리는 내내 현장에서 함께 했다. 도라는 어느 누구에게도 기가 죽지 않았고, 그 누구에게라도 지기 싫어했으며, 소유욕 또한 강한 여자였다.

그런 성격이니, 피카소에게 쏟는 열정만큼이나 마리 테레즈의 존재에, 그리고 피카소가 자기만의 남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날까로운 반응을 보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마음 다른 한 구석에서 똑똑한 자신이 왜 이런 상황에 얽매여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지 분개하고 있었다. 기품 있고 자부심 강하던 도라는 하루가 다르게 점점 신경길적이고 사납게 변해갔다.

피카소는 그런 도라에게서 영감을 받아 <게르니카>의 화면 맨 오른쪽에 절규하는 여인의 이미지를 완성하였다. 그림 왼쪽에 아이를 안고 있는 여성은 마리 테레즈일 것이다. 늘 자신을 황소로 표현하던 피카소는 이 그림에서도 황소로 나온다. 그 황소는 지금 마리 테레즈 편에 서 있다. 중앙에서 "히잉" 소리를 내듯 머리를 뒤로 젖히며 날뛰는 말이 보인다. 이 말은 혀에 날까로운 칼을 품고 있는데, 이것은 공격적으로 변한 도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스릴 수 없다면 차라리 터뜨려라

 

파블로 피카소<우는 여인> 1937 캔버스에 유채 60×49 런던 테이트 갤러리

시 눈을 감고 머리카락을 날미며 초원을 달리는 말을 상상해보자. 얼마나 자유로운 모습인가! 도라도 원래는 초원의 말처럼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여자였다/. 가엾게도 그 자유를 내어준 대가로 그녀가 얻은 것은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를 잠식시키는 광기였다. 몇 년 뒤 도라의 증세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해져 있었다. 자기감정과의 게임에서 완전히 패한 것이다.

피카소가 그려준 도라의 초상화<우는 여인>에서 그녀는 격하게 울고 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자책하는 대신, 일단 큰 소리를 내어 실컷 우는 그녀에게 필요한 것 같다. 어쩌면<우는여인>은 피카소가 도라에게 내려준 처방의 그림이었는지도 모른다. 병도 주고 약도 준 격이라고나 할까.

감정은 피하려 하면 오히려 더 커지는 법이다. 가눌 수 없는 감정 때문에 생긴 증상이라면 힘겹게 감정을 억누르기보다는 차라리 터뜨려버리는 게 낫다. 모든 감정은 한 번 두 번 일어났다가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스러지기 마련이다. 사랑도 그렇고 울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분법을 좋아하지는 않지만,<게르니카>를 본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뉜다. 울고 있는 도라를 본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

 

그림에, 마음을 놓다 (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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