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에세이스트 선동기 씨는 미술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네이버 파워블로그 ‘레스카페’의 주인장으로 잘 알려져 있고, 『처음 만나는 그림』 『나를 위한 하루 그림』 『그림 속 소녀의 웃음이 내 마음에』 등의 미술 관련 대중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림에는 다양한 기능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기록물로서의 역할입니다.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 그림만큼 좋은 기록 매체는 많지 않았지요. 중세의 풍속화를 통해서 우리가 당시 삶의 양태를 짐작할 수 있는 것도 그림 덕분입니다. 의상의 변천을 연구하는 복식사(服飾史)에서 자주 언급되는 화가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제임스 티소인데, 그의 작품 속 여인들의 의상은 복식사를 연구하는데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한 눈에도 범상치 않은 화려한 의상의 여인이 남자의 팔을 끼고 입장하고 있습니다. 드레스와 그에 어울리는 부채 그리고 당당한 눈빛을 가진 여인의 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습니다. 오른쪽 남자는 누군가에게 귓속말을 하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 뒤에서 하는 이야기가 좋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주위의 수군거림에 전혀 신경 안 쓰는 표정입니다. 그 정도 비웃음에 머뭇거린다면 그것은 야심이 아니지요.
프랑스 낭트에서 태어난 티소는 드가, 마네와 함께 공부했는데, 드가가 그의 초상화를 그릴 정도로 꽤 친한 사이였지만 둘이 크게 싸운 후 드가가 요청한 인상파 전시회 참가를 거부했습니다. 보불전쟁 이후 파리코뮌의 지지자로 의심을 받게 된 티소는 체포를 피해 영국 런던 행 배에 몸을 싣습니다.
세 아이에게 둘러싸인 엄마의 표정에 행복이 넘칩니다. 아이들이 입고 있는 옷과 여인의 드레스 색상도 잘 어울려 세련되고 우아한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인물 묘사도 뛰어나지만 의상과 소품에 대한 묘사도 탁월했던 티소였습니다.
티소는 캐틀린과 동거에 들어갔고 그녀와 함께 살았던 시간이 티소의 일생 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화려한 의상을 입은 여인들이 계속해서 그의 작품을 통해 묘사되었습니다.
그러나 1882년 캐틀린이 28세 그리고 티소가 46세 되던 해, 캐틀린은 자신이 앓고 있던 말기 폐결핵을 비관해 자살하고 맙니다. 티소의 행복한 생활은 거기까지였습니다. 캐틀린이 세상을 떠나고 5일 후, 티소는 모든 것을 그대로 둔 채 파리로 떠나는데, 집은 나중에 화가 알마 타데마가 구입합니다.
파리로 돌아온 피소는 3년 정도 파리의 생활을 화폭에 옮깁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 갔다가 갑자기 기이한 체험을 하고 난 후 종교화에 헌신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때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17년 간 그가 남긴 구약과 신약 그리고 예수에 대한 수채화가 700점에 달합니다.
티소는 프랑스 화가이지만 프랑스 비평가들로부터는 너무 영국적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의 대중들로부터는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의 작품들은 고가로 팔렸습니다. 한편으로는 미술사보다는 옷의 역사를 다루는 복식사에서 그의 작품을 더 많이 인용한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19세기 화려한 의상이 궁금하시면 제임스 티소의 작품을 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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