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유혹 | 워터하우스의<오디세우스에게 술잔을 권하는 키르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오디세우스에게 술잔을 권하는 키르케> 1891 캔버스에 유채 149×92 올덤 아트 갤러리
사랑은봄의 아지랑이처럼 소리 없이 다가온다. 사랑은 언 땅을 녹이는 봄바람처럼 굳어 있던 마음을 녹인다. 사람들은 사랑으로 형언할 수 없는 뜨거움이 온몸을 감싸도 그 뜨거움을 모른 채 그 곁으로 자꾸 가고 싶어 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무슨 일이든 선택을 해야 하지만, 사랑만큼은 스스로 선택을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사랑은 일방통행이어서 마음 먹었던 대로 움직여주지를 않기 때문이다. 사랑의 갈증을 감당하기에는 불행의 정도가 너무 거대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사랑의 목마름을 참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열리지 않는 문의 빗장을 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원하지 않는 사랑을 쟁취하고 싶을 때 술로 사랑을 유혹하는 가장 흔한 방법을 쓰기도 한다. 아주 통속적인 방법이지만, 그래도 술에 취한 남자는 짓눌러진 욕망의 빗장을 풀고 여자의 사랑을 절실히 원하기 때문에 사랑을 쟁취할 수도 있다. 그래서 술로 유혹하는 것은 역사 이래 여자들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방법이다.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로 돌아가는 사람은 없다.
<오디세우스에게 술잔을 권하는 키르케>는 술로 유혹하는 여인의 냉혹함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요정 키르케는 아름다운 외모와 요염한 육체의 소유자다. 그녀는 자신의 관능적인 외모 말고도 마법이라는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마법에 한번 걸려들면 남자들은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그녀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트로이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부하들을 키르케 섬을 정찰하러 보냈다. 하지만 그의 부하들은 키르케의 마법에 걸려 모두 돼지로 변하고 만다. 분노한 오디세우스는 헤르메그의 도움을 받아 키르케의 마법을 퇴치한다.마법의 힘이 통하지 않자 키르케는 자신의 관능적인 육체를 이용해 오디세우스에게 술을 권한다. 술에 취한 오디세우스는 무분별한 욕망에 황망하게 무녀져 그녀의 전부를 사랑하게 된다. 오디세우스는 사랑하는 아내와의 인연을 잘라내고 키르케의 매력에 빠져버린 것이다.
이 작품에서 키르케는 매혹적인 몸매가 다 드러나 보이는 옷을 입고 오디세우스에게 술을 권하고 있다. 그녀의 왼손에 들려 있는 마술 지팡이는 오디세우스가 술에 취하기만 바라고 있다. 마법의 지팡이가 술에 취한 남자를 치는 순간 돼지로 변하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는 그녀 등 뒤에 있는 거울을 통해 희미하게 모습을 보이고 있고. 그녀의 발밑에는 돼지로 변한 남자가 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1849~1917)는 이 작품에서 키르케를 화면 정면에 당당하게 내세웠고, 영웅 오디세우스는 희미하게 표현했다. 그것은 여자의 유혹이 강렬해서 한번 빠지면 남자는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술은 현실을 잊게 한다|슬론의<맥솔리의 선술집>
존 슬론<맥솔리의 선술집> 1912 캔버스에 유채 66×81디트로이트 인스티튜트
주어진 역활에 충실한 여기자처럼 살면 되지만, 자신의 역활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삶의 모진 바람이 가슴속을 시리게 파고들 때 사람들은 술을 찾는다.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달래고 싶어 인새의 고달픔을 추스르고 싶어서이다.
남자는 작은 희망의 불씨 하나를 가지고 모질게 매달리면서 산다.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그리고 자신의 일에서 인정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작은 희망에 매달려 있는 자신을 보고 있을 때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술집이다. 술집에서는 사무치게 외로운 사람은 없다. 술은 누구와도 친구가 되어 이야기를 다 들려주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분위기 좋은 고급 술집에서 먹는 술이든, 담배 연기 찌든 벽지와 소란스러운 분위기 그리고 정갈하지도 않은 음식 사이에 끼어서 먹는 술이든 취하면 다 똑같다. 술에 취하면 세상은 공평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술잔 속에 사람들의 수많은 사연을 담고 있지만, 항상 술잔은 비워져 있기 때문이리라.
<맥솔리의 선술집>은 싸구려 술집에서 술을 즐기고 있는 잠자들을 표현했다. 이 작품에서 웨이터의 하얀 가운은 화면을 환하게 밝혀주고 있고, 술을 마시고 있는 남자들은 어둠속에 묻혀 있다. 담배 연기에 찌들었는지 술집 천정에 매달려 있는 전구조차 빛을 잃어버리고, 벽에 걸려 있는 액자나 장신구 등 어느 것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없다.
술잔을 들고 있는 남자들은 삷을 휘청거리게 만드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에게 집중하고 있어 주변의 소란스러움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슬론은 안주도 없이 생맥주 한 잔이면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노동자들의 삶을 선술집이라는 공간으로 표현했다.
존 슬론(1871~1951)은 이 작품에서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어울려 있는 미국의 선술집 풍경을 표현했다. 술집에서 유일하게 술에 취해 있지 않은 사람인 웨이터는 밝게 묘사했다.
명화속의삶과욕망_박희숙 2007. 10
마로니에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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