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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그림・전시

고양이, 강아지와 함께하는 소녀

by 파장 2012. 7. 1.

성의 탐색 페히슈타인의<고양이와 함께 소파에 누워 있는 소녀>

 막스 페히슈타인<고양이와 함께 소파에 누워 있는 소녀> 1910 캔버스에유채 96×96 쾰른 루드비히 박물관

 

흑 같은 어둠속에 같혀 있어도 빛이 틈새로 새어드는 것을 막을 수 없듯이, 소녀는 스스로 원하지 않아도 이제 여자로서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호기심과 두려움에서 해방된 소녀는 자신의 숨겨진 욕망을 표출하고자 한다. 소녀는 새롭게 발견한 신비롭고 마술같은 성의 즐거움에 녹아든다. 마치 굶주렸던 것처럼 새롭게 배운 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소녀는 성장해 시간의 속삭임 속에서 성을 탐색하기 위해 애쓴다. 소녀에게 잡힐 것 같지 않았던 욕망이 실체를 드러내 소녀 스스로 오감을 자극하게 한다.  성에 대한 풀리지 않는 궁금증으로 속을 태우던 시기는 지나 스스로 만족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막 성에 눈을 뜬 소녀의 욕망은 거침없이 나아가기만 한다.

막스페히슈타인의<고양이와 함께 소파에 누워 있는 소녀>는 성에 막 눈 뜬 소녀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녹색 소파 위에 권태롭게 앉아 있는 소녀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다. 소녀의 오른손은 턱을 괴고 있고, 왼손은 허벅지 사이 은밀한 곳을 애무하고 있다. 자신을 만지고 있는 손은 얼굴보다 더 붉게 물들어 있고, 관능에 도취되어 몸을 비틀고 있다.

소녀는 한여름 늦은 오후의 지루함이 만들어낸 환각처럼 나른하면서도 달콤한 잠에 빠져 있는 듯 눈을 감고 있지만, 관능을 감추지 못한 소녀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피어 오른다. 소파 한쪽 구석에는 순백의 고양이가 소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른한 오후의 즐거움에 빠져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고양이가 등을 보이고 있다고 해서 소녀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은 아니다. 페히슈타인은 순백의 고양이 등에 옅은 붉은색을 그려 넣음으로써 소녀와 마찬가지로 관능에 빠져 있음을 암시하였다. 긴장을 풀고 자신의 몸을 애무하고 있는 소녀의 붉은색과 초록색 소파가 대비되어 작품의 긴장감을 살리고 있다.

막스 페히슈타인(1881~1955)은 이 작품에서 고양이를 음침하고 표독스러운 이미지보다는 퇴폐적 관능의 상징으로 표현했다. 이 같은 이미지를 증대 시키기 위해 어두운 색으로 윤곽선을 그려 넣었다.

이 작품의 모델은 열다섯 살의 마르셀라다. 그녀는 1910년 다리파 화가들이 선호하는 모델이었는데, 같은 배경과 동일한 포즈로 가르히터의 작품에도 등장한다.

 

성의 유혹 프라고나르의<강아지와 함께 있는 소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강아지와 함께 있는 소녀> 1775 캔버스에유채 89×70 뭰헨 알테피나코테크 구미술관

 

녀는 자신이 여자임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시도 때도 없이 그것을 증명하고자 하며, 남자들이 자신의 유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궁금해 한다. 이제 여자라는 무기를 휘두를 줄 알게 되어 소녀의 유혼은 잔혹하며 탐욕스럽고 집요해진다. 감정을 억누를 필요가 없는 소녀는 스스로 유혹의 덫을 놓을 줄 알게 되었고, 낡은 장난감을 던져버리고 성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탐틱하게 된다. 소녀는 열기에 들뜬 욕체를 과시하고 싶어 한다.

프라고나르의<강아지와 함께 있는 소녀>는 소녀의 계산된 유혹을 표현한 작품이다. 얼핏 보면 침대 위에서 강아지와 함께 놀고 있는 소녀의 모습은 천진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소녀의 유희는 결코 천진 스럽다고만 할 수는 없다. 아래도리를 드러내고 누워 다리를 무릅 위까지 올리고 있는 소녀의 포즈에서 자신의 은밀한 곳을 보이고 싶어 하는 심리가 보인다.

강아지의 꼬리가 소녀의 은밀한 곳을 닾어 가려주고 있지만, 그 모습이 더 선정적이다. 강아지는 소녀의 무릅 위에서 소녀와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고 머리에 단 리본도 소녀 같지만, 이것은 사람과 동물의 교감을 교감을 표현한 것은 아니다. 강아지와 시선을 맞추고 있는 소녀의 눈빛은 유혹하는 여자의 모습 그대로이다. 화면 아래로 보이는 침대 및에 떨어져 있는 핑크색 드레스는 사랑이 시작되고 있음을 상징한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는 로코코 시대의 화가로서, 노골적이며 선정적인 그림을 주로 그렸다. 이 작품에서 화면의 절반 윗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풍성하고 붉은 밤색 천(천개)은 여성의 자궁을 상징한다. 소녀의 침대 위를 둘러치면서 천개가 벌어져 있다는 것은 소녀가 사랑을 시작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명화 속의 삶과 욕망_박희숙 2007. 4

마오니에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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