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진과카메라/사진학강의

사진의 역사(3) 젤라틴 유제 롤 필림과 컬러 사진

by 파장 2015. 7. 22.

 

만인을 위한 사진 젤라틴 유제 롤 필림

 

1880년대까지만 해도 일반 대중들이 찍은 사진은 거의 없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한 번쯤 자신의 모습의 사진을 찍기를 원했고, 사진을 본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중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사진을 찍어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콜로디온 습판 방식은 숙련된 기술과 많은 장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사진은 전문가와 아주 열성적인 소수의 아마추어들에게만 한정되었다. 당시 사진가들은 콜로디온 습판 방식에 대해서 불평을 했고, 그것을 개선시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1880년대가 끝나갈 무렵, 두 가지 기술이 완성됨으로써 감도가 좋은 건판을 만들어내게 되어, 휴대하기 불편하고 깨지기 쉬운 유리판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그 첫 번째가 감광성 은염을 지지하는 역할을 하는 새로운 젤라틴 유제의 개발이었다. 그것은 소의 뼈와 가죽을 처리해서 얻은 젤리 상태의 젤라틴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었다. 건조되더라도 그 감도가 유지되었기 때문에, 다른 하나의 발명품인 롤 필림에도 응용될 수 있었다. 누구나 사진을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롤 필림의 출현으로 사진은 일대 혁신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진을 대중화시킨 대부분의 공은 조지 이스트만(George Eastman)에게 돌아갔다. 뉴욕 로체스터에서 은행원으로 있던 그는 이스트만 코닥사를 설립해 미국 최고의 기업으로 키웠다. 1877년 첫 습판식 카메라를 구입했던 그날부터 더 간단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는데 많은 짐을 갖고 다니지 않아도 되어야 한다.” 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롤 필림 제조를 시도했지만, 이스트만이 필림의 대량 생산을 위한 장비를 발명할 때까지 성업적인 생산에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스트만이 만들어낸 것은 얇은 젤라틴 유제를 발라놓은 롤 종이인 이스트만 아메리카 필림(Eastman’s American Film)이었다. 빛을 통과시켜서 프린트를 할 수 있는 네거티브를 얻기 위해서는 불투명한 종이에서 유제를 분리시켜야만 했다. 종이로부터 분리될 때 네거티브가 늘어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진가들은 그 일에 어려움을 겪었고, 현상을 위해서 노출이 끝난 필림을 회사로 다시 보내야 했다.

 

 

 

코닥 박스 카메라 1888년

 

 

롤 필림은 새로운 종류의 카메라를 출현시키게 했다. 저렴하고 가벼우며 작동이 간단한 새로운 카메라는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인 사진가로 만들었다. 이스트만은 1888년 코닥 카메라를 내놓았는데, 그 카메라에는 100장의 사진을 찍을 만큼의 필림을 넣을 수 있었다. 한 롤을 다 찍고 나면, 필림이 들어있는 채로 카메라를 로체스터에 있는 이스트만 사로 보냈다. 그러면 곧 새로 필림을 장착한 카메라와 함께 현상과 인화가 끝난 사진이 고객에게 되돌아왔다. “버튼만 누르고, 나머지는 우리에게 맡기세요. (You push the button, we do the rest.)” 가 코닥의 슬로건이었다.

 

코닥 카메라는 하룻밤 사이에 국제적인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하니발 굿원(Hannibal Goodwin)이 종이를 대지 않고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견고하며, 얇은 유제 코팅이 된 투명하고 유연한 플라스틱 재질의 롤 필림을 발명함으로써, 간편하고 가벼운 카메라와 다루기 쉬운 롤 필림을 사용하는 새로운 사진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스트만 코닥사는 누가 자사 제품의 주된 사용자 층이 될 것인지를 일찍부터 인식하고 있었다. “이 사진들이 모여서 훗날 여러분이 살아온 삶의 생생한 역사가 될 것이고, 그 가치는 날이 갈수록 더 커질 것이다.”라는 광고 문구에서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프레드릭 처치(Frederick Church), 코닥 카메라를 들고 있는 조지 이스트만, 1890

 

 

코닥 박스 카메라를 시장에 내놓음으로써 누구나 사진을 즐길 수 있게 만든 조지 이스트만이 S. S. 갈라이호의 선상에서 자신의 발명품을 사용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롤 필림이 발명되면서 카메라는 휴대할 수 있을 만큼 크기가 작아졌고, 감도가 높은 젤라틴 유제가 생산됨으로써 1/25초의 노출이 가능했기 때문에, 더 이상 사진을 찍기 위해 꼼작도 안하고 있을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다.


 

컬러 사진

 

다게르 자신도 한 가지만 더 있으면 자신의 발명이 완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컬러였다. 다게르는 “다른 것은 바랑 나위가 없지만, 이 모든 빛의 산물들을 온전한 색으로 보여주어서 휘둥그레진 사람들의 눈을 볼 수 있다면...”이라고 썼다.

 

1861년 영국 물리학자 제임즈 클럭 맥스웰(James Clerk Maxwell)이 몇 번의 실패 끝에 세계 최초로 컬러 사진을 선보이게 되었다. 색시각(color vision)에 강의 자료를 준비하던 중에 그는 타탄(tartan : 스코틀랜드 격자무늬 옷감) 리본의 색을 재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는 레드, 그린, 블루의 각각 다른 세 가지 필터를 통해서 리본을 촬영한 3장의 네거티브를 만들었다. 그 3장의 네거티브로 흑백 포지티브 슬라이드를 만든 다음, 카메라에서 사용했던 것과 같은 레드, 그린, 블루의 필터를 통해서 투사시켰다. 그리고 세 개의 이미지를 한 군데로 중첩시키자 리본의 이미지가 원래 컬러대로 재생되었다.

 

맥스웰은 레드, 그린, 블루의 3원색을 서로 다른 정도로 혼합함으로써 컬러를 만들어내는 가법 컬러 혼합(additive color mixing)을 발견했다. 1869년에는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론이 발표되었다. 각자 독립적으로 연구를 진행하던 ‘뒤꼬 뒤 오롱(Ducos du Hauron)’ 과 ‘샤를르 크로(Charles Cros)’ 라는 두 프랑스인들이 거의 동시에 감색 컬러 혼합(subtractive color mixing)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오늘날 컬러사진의 기반이 되는 감색 컬러 혼합에서 컬러는 레드, 그린, 블루의 보색인 시안, 마젠타, 옐로우의 세가지 염료를 혼합해서 만들어진다. 이 염료들이 모든 색을 포함하고 있는 백색 광선(white light)으로부터 어떤 컬러를 빼앗는 역할을 한다. 폴 컬러 이미지를 형성시키기 위해서 세 가지 별도의 염료의 색을 이미지들을 중첩시키는 ‘뒤꼬 뒤 오롱’의 기본 감색법 프로세스에는 많은 변화들이 있는데, 그 자신이 고안한 3색 카본 프로세스, 카브로(cabro) 프로세스, 그리고 현대의 다이 트랜스퍼 프린팅(dye transfer printing) 등이 있다.

 

1907년에 앙뜨완느 뤼미에르(Antoine Lumiere)와 루이 뤼미에르(Louis Lumiere)라는 프랑스 형제가 오토크롬(Autochrome) 방식을 시장에 내놓았다. 유리판에 레드-오렌지(rad-orange), 그린, 바이올렛 염려로 염색한 미세한 감자 전분 입자를 칠한 것으로, 한 층에 한 전분 입자만 두껍게 되어있다. 거기에 감광 유제가 첨가된다. 광선이 유색 입자를 통과해서 감광 유제에 도달하게 되는데, 각 입자 뒤에 있는 유제는 그 입자와 같은 색을 가진 장면에서 오는 빛에 의해서만 노출된다. 현상을 거치면 풀 컬러 슬라이드를 얻을 수 있다.

 

 

아놀드 겐트( Amold Genthe), 캘리포니아의 양귀비 밭에서 헬렌 쿠크 윌슨, 1908년경. 오토크롬

 

입자가 굵고 색이 차분한 오토클롬 방식은 19세기말의 회화주의 사진가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이미지를 구성하는 컬러 입자들이 정상적인 감상 거리에서는 마치 점묘가들이 수많은 점으로 만들어냈던 효과와 마찬가지로 서로 섞여 보인다.

 

 

감색법의 코다크롬(Kodachrome)이 개발됨으로써 컬러사진이 실용성을 갖게 되었다. 코다크롬은 레오폴드만(Leopold Mannes)과 레오폴드 고도우스키(Leopold Godowsky)라는 두 음악가이자 아마추어 사진 연구가에 의해서 완성되었는데, 이들은 나중에 이스트만 코닥사의 연구 과학자로 합류하게 된다. 그들의 공동작업의 결과로 1935년에 소개된 코다크롬은 레드, 그린, 블루 가운데 한 가지 원색에만 각각 반응하는 세 가지 유제 층을 입힌 한 장짜리 필름이었다. 이로써 단 한 번의 노출로 컬러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1936년에 시판된 코다크롬 필림은 35mm 사진 시장을 위해서 생산되었다. 이 필림은 정확하고 저렴하며, 사용이 편리한 컬러사진을 얻는 최초의 방법이었다. 

 

아마추어 시장의 규모는 엄청나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스냅사진들은 모두 컬러로 찍힌다. 광고와 출판시장에서도 컬러가 널리 쓰인다. 마음대로 색상을 바꿀 수도 있는 디지털 이미징이 점점 주위에서 보편화되어 가고 있으며, 컬러로 캡쳐된 이미지는 언제라도 흑백으로 남아있던 보도사진과 예술(fine art)로서의 사진도 지금은 거의 대부분 컬러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