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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카메라/사진학강의

사진의 역사(4) 초기 인물과 풍경사진

by 파장 2015. 7. 26.

사람들은 자신의 인물사진(Portrait)을 갇고 싶어 했다. 

 

사진을 찍으려면 긴 노출 시간이 필요했던 당시에는 인물 사진을 찍기위해 몇 분 동안 눈을 깜빡이거나 몸을 움직이지 않고 있어야 한다. 햇빛을 정면으로 받고 눈물을 흘리며 꼼짝 않고 있어야 했으면서도 사람들은 ‘신성한 태양의 빛’으로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스튜디오로 몰려들었다. 1839년대 활동했던 사진가인 나다르(Nadar)와 줄리마 마가렛 카메론(Julia margaret Cameron)은 당시 살았던 유명인들을 찍은 인물 사진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줄리마 마가렛 카메론,     평화의 키스 1839

 

 

특허 프리미엄 컬러 인물사진(Patent Premium Coloured Likenesses)을 만드는 플럼브 국립 다게르 갤러리(Plumbe’s National Daguerrian Gallery)나, 한 방에 두 장을 찍어 수 있도록 이중 렌즈를 단 카메라를 이용하는 할인 상점 같아 곳에서 일반인들도 인물 사진을 찍었다. 명함판 사진(cartesde-visite)이라고 불리는 작은 사이즈의 인물 사진이 1860년대 유행했다. 서부로 떠난 개척자들에게는 그것이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이나 친구들은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고리였다. 개척자들이 서부로 가지고 간 책 두 권이 있었는데, 그 하나는 성격책이자 다른 하나는 사진 앨범이었다.

 

줄리마 마가렛 카메론 (Julia margaret Cameron) 덕워스 부인 1867

 

 

 

카메론 영국 상류 사회의 유명인들인 자신의 친구와 동료들을 찍었다. 이 사진은 버지니아 울프로 더 알려진 줄리아 잭슨 덕크워스 부인을 찍은 것이다.

 

 

사진은 언제나 신비스러운 존재였다.

 

1843년 시인 엘리자베스 바레트(Elizabeth Barrett)는 다게레오타이프 인물 사진들을 보고 나서 친구에게 이렇게 썼다. “이 인물 사진들이 얼마나 근사 한 것인지... 내가 근래에 보았던 판화가의 작품 이상으로 섬세하고 정교한 판화 같아서, 이 세상에서 내게 소중한 모든 이들을 그렇게 기념하고 싶어요. 그저 비슷하게 보인다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스며있는 사람이 생생한 모습으로 영원히 담겨 있답니다. 나는 이제까지 만들어진 가장 고귀한 예술가의 작품보다는 차라리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기념할 수 있는 그것을 가질 것입니다. 나는 예술을 경배하거나 또는 그것을 무시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사랑을 위해서입니다. 당신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이 장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그 남자는 아마 엘리자베스의 그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초기 여행사진

 

초기 여행사진들은 미지의 장소에 가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19세기에만 해도 세상에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경이로운 곳이 많았다. 철도가 놓이고 증기선이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먼 곳들은 여전히 이국적이고 신비로웠으며 사람들은 그곳의 사진을 보고 싶어 했다. 그 당시에도 낯선 미지의 세계를 그린 풍경화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그림을 그린 화가의 개인적인 시각을 담은 것이었다. 카메라는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의 연장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여행사진은 실제 모습을 충실히 재현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졌다.

 

중동의 국가들은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19세기 중동 지역은 성서의 장소들과 고대 문화들과 연관되어 있어서 당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1839년 다게르 방식의 사진술이 발표된 지 몇 주 되지도 않아서 어떤 사진 팀이 이집트에 있었다. 그들은 “우리는 다게레오타이프 사진으로 카이로에 있는 흥미 있는 풍경들을 닥치대로 찍어서 보내겠다.”라고 적었다. 다게레오타이프를 직접 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사진을 따라 그랴서 동판에 새겨야 했었다. 나중에 칼로타이프와 콜로디온 방식의 사진이 발명되면서부터는 동판화가 아닌 더 선명하고 사질적인 중동의 사진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티모시 H. 오설리번  (Timothy H. O’Sullivan), 블랙 캐년, 콜로라도 강, 1871

 

 

사진이 발명되었고 알려지자 마자 먼 미지의 땅을 촬영하려는 탐사가 시작되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먼 곳에서 동판이나 유리판에 유제를 칠고 노출하고 현상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약품, 도구들 이외에도 탐험가들에게는 상당한 인내심과 강인함이 있어야 했다.

 

사진에서 보트의 뒤편에 보이는 것이 티모시 오설리번의 암실이다. 그는 홈볼트 싱크라는 지역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곳은 작업하기에 훌륭했고 경치도 더할 더할 나위가 없었다. 한 가지 나쁜 점이 있다면 여행 내내 우리를 따라다녔던 독성이 강한 모기떼들이었다. 그리고 선열병이라고 하는 열병에 자주 걸려서 녹초가 되곤 했다. 그러니 왜 우리가 그곳에서 더 이상 촬영할 수 없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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